오피니언 사설

바른정당, 깨끗한 보수와 구태 청산이 창당 정신 아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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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어제 사퇴했다.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지 8일 만이다. 구태정치 청산을 내걸었던 당의 리더인 만큼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이 대표를 낙마시킨 ‘검은돈’ 의혹의 진위는 물론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일이다. 하지만 바른정당으로선 수사가 본격화된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다. ‘모두 갚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입장이 사실이더라도 유력 정치인이 업자와 수시로 만나 금품을 빌리고 갚는 거래관계를 장기간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처신이다.

바른정당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수 재건을 외치며 새누리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만든 당이다. 바른이란 표현을 당명에 넣은 것은 새롭고 깨끗한 보수를 지향하겠다는 다짐에 따른 것이다. 무너진 보수를 되살리려면 먼저 솔선수범하고 헌신해야 하지만 창당 이후 지금까지 보여 준 건 그런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계파 분열에 불협화음이란 구태정치의 되풀이였고 이젠 거기에다 보수 부패 이미지까지 덧칠하게 생겼다. 문재인 정부가 인사 실패와 불안한 외교안보 행보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는 야당의 이런 무기력과 지리멸렬이 큰 기여를 했다.

바른정당은 창당대회를 반성문으로 시작했다. 모든 의원이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새누리당을 가짜 보수라며 보수 재건의 밑거름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보수 재건은커녕 보수의 또 다른 짐이 될 판이다. 내년 지방선거 전에 자유한국당에 흡수되거나 존재감 없는 한심한 주변부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 사임을 계기로 깨끗한 보수, 당당한 보수의 약속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 주길 기대한다. 그러자면 말로만의 반성이 아닌 가혹할 정도의 개혁과 쇄신이 따라야 한다. 현재의 바른정당 모습은 보수의 미래나 희망에 대한 회의감을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