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벽과 나무기둥 사이에 집을 지은 말벌과의 사투는 누구의 승리라 할 것도 없이 한 달 남짓 만에 끝이 났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상처를 입었다.
집안에 들어온 100여 마리 말벌들 #제압했지만 등에 침맞고 병원신세 #나이 어울리지 않는 용감함 버리기로
집 안으로 흙을 파고 들어온 백 마리가 넘는 놈들을 파리채로 제압하면서 누렸던 승리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않고 몰래 집 안으로 잠입한 놈이 의자 등받이에 잠복해 있다가 방심한 채 다가오는 내 등짝에 큼지막한 침을 쑤셔 박았다.
앉은 자리에서 50cm의 서전트 점프(?)를 할 정도의 통증이 왔고, 곧이어 등에 확~하고 불이 붙었다. 그때부터 늦은 저녁까지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깊은 성찰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나는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으며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그래서 온몸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있다. 왼쪽 눈 위 상처는 산정호수에서, 어긋난 갈비뼈는 직원 체육대회에서, 겨울만 되면 시큰시큰한 왼쪽 발목은 북한산에서. 상처로 남지 않은 죽을 뻔한 고비는 또 얼마나 많았나.
진작에 119를 불렀어야 했다. 이 정도 일로 이 산속까지 119 부르기 미안했으면 뭐든 잘하시는 김 사장님께라도 도움을 청해야 했었다. 등짝에 밥뚜껑만 한 동산이 볼록 생기고, 어질어질한 기분이 계속되어 보건소로 달려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소식을 듣고 김 사장님이 부랴부랴 달려와 “왜 진즉에 연락 안했어예~” 하며 가져온 장비로 집 안팎의 구멍을 메우셨다.
왜 진작 연락 안 했을까? 손에 들린 파리채에 탁~ 하고 손맛을 전해주며 나가떨어지던 놈들과의 전투를 즐겼던 건가? 서울 있는 친구들에게 말벌과의 전투를 신나게 떠벌리던 나는 도대체 몇살인가? 몇살까지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이고 아슬아슬하게 살 건가? 저녁이 되자 가렵고 따가운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붓기는 가라앉았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 광고 카피 중에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고 있지 않았는가?” 라고 던지는 게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걸 거다. 네 나이보다 더 젊게 살아라. 이 차는 나이 든 너한테도 어울리는 차다. 주저하지 마라.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절벽을 뛰어 내려 바다로 빠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카피도 멋있고, 그림도 좋다.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안돼~~~ 나답다고 여기던 행동들이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제 나는 내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야 돼~~~ 오래 살고 싶단 말이야~~~”
진로도 퇴로도 다 막힌 그 지옥의 공간을 비집고 나온 몇 마리의 말벌을 파리채 대신 멀찌감히 떨어져 에프킬러를 뿌려 잡으면서 나는 신음처럼 말했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