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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현실이 된 북극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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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남극점을 처음 정복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북극의 역사에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1906년 50t도 안 되는 작은 고깃배를 타고 오슬로를 떠나 그린란드·캐나다·베링해협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이다. 얼어붙은 북극해에서 3년 반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얻어 낸 성취였다. 18세기부터 전 세계 탐험가들은 북극과 북극해를 정복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얼음과 추위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1845년 영국 해군 제독 존 프랭클린이 배 2척을 이끌고 북극 탐사에 나섰으나 두 달 만에 실종돼 선원 129명 전원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국인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을 정복한 뒤에도 배로 북극해를 지나는 건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아문센은 불굴의 의지로 북극해 항해가 가능함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탐험이었다. 상업적 목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상황이 변했다. 북극이 매년 여름 최고기온을 경신하면서 얼음이 녹는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노르웨이 등의 쇄빙선이 그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선 뒤엔 해마다 수십 척의 상업용 선박이 원유며 천연가스를 실어 날랐다. 수에즈운하를 통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극동아시아에 오는 기존 항로는 2만1000㎞에 이른다. 하지만 북극항로는 1만2700㎞다. 40일에 이르는 항해시간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

지난 24일 러시아 선적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인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가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를 출발해 19일 만에 충남 보령항에 도착했다. 러시아 연안 북극해로 왔다. 이 항로를 이용한 게 국내에서도 처음은 아니다. 2013년 10월 글로비스가 국적선사로는 최초로 스웨덴 배를 빌려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에서 광양항까지 35일 만에 주파한 적이 있다. 지난해에도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가 같은 경로로 LNG를 운반했다. 하지만 이번엔 쇄빙선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항행했다는 게 다르다. 북극 얼음이 날로 녹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로선 경제적인 수송로가 새로 생기는 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라는 대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는 날로 더워지고 지구촌 곳곳은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북극해의 얼음과 바꿀 미래는 꼭 밝은 걸까.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