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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세기의 돈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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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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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26일 온 동네 사람들이 새마을 회관에 몰려들었다.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알리, 친구는 이노키를 응원했다. 딱지 열 장을 내기로 걸었다. 막걸리 내기를 한 어른들도 패가 갈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던가. 15회전 내내 이노키는 링에 누워 발차기를 했고, 알리는 서서 허공에 펀치를 날렸다. 무승부. 맥 빠진 ‘서커스 매치’에 야유가 터졌다. 알리는 600만 달러(약 67억원)라는 당시로는 천문학적 대전료를 받았다.

이종(異種) 스포츠 영웅들의 맞대결은 세계 팬들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각각의 경기방식대로 시합하면 승부를 내기 어렵다. 밀림의 영원한 라이벌인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 같다고나 할까. 홀로 먹이를 쫓는 호랑이와 집단사냥을 하는 사자의 싸움 방식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인간은 ‘하나의 태양’을 보고 싶어 안달한다. 90년에는 ‘핵 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맞대결이 추진되기도 했다. 성사됐다면 또 싱거운 ‘돈 잔치’가 됐을 성싶다.

어제는 달랐다. ‘49전 무패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종합격투기(UFC)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의 세기의 대결 말이다. 두 주먹의 맞대결은 무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맥그리거가 UFC 사상 두 체급을 처음 석권한 옥타곤의 왕자지만 복싱 룰대로 하면 금방 뻗을 거란 얘기였다. 맥그리거는 10회까지 버티다 TKO패 했지만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였다. 맥그리거가 발차기나 테이크다운(넘어뜨리기) 같은 UFC 기술 사용을 대전 조건으로 내걸었다면 좀 더 박진감 있었을 듯싶다.

오늘 개막하는 올해 마지막 메이저 테니스 대회 US오픈의 총 상금은 570억원이다. 그런데 메이웨더는 3300억원, 맥그리거는 1500억원 이상을 챙길 거란다. 경기장의 가장 비싼 좌석이 1132만원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맹수 같은 야만적 싸움을 즐긴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승자인 메이웨더는 ‘머니 벨트’를 허리에 찼다. 다이아몬드 3360개, 사파이어 600개, 순금 1.5㎏이 박힌 악어가죽 벨트다. 불혹의 나이에 화려한 돈 잔치를 하고 링을 떠났다. 다음에는 또 어떤 스포츠 영웅들이 탐욕의 잔치에 나설까.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