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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된 동물원 "한 직장 30년 다닌 기분 직장 안 망해 다행"

중앙일보

입력

내년 1월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다음달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그룹 동물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년 1월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다음달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그룹 동물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년이면 서른을 맞는 동물원은 참 특별한 밴드다. 1988년 1월 데뷔 당시 전업 뮤지션을 꿈꾼 사람은 없었지만 30년째 밴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창단 멤버 중 절반 이상(김광석ㆍ김창기ㆍ 박경찬ㆍ최형규ㆍ이성우)이 밴드를 떠났지만 마치 동창회처럼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로 다시 주목받은 ‘혜화동’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악이 됐다. ‘거리에서’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음악과 스토리를 담은 뮤지컬도 ‘동물원’, ‘그 여름, 동물원’ 등 두 편이나 된다.

다음달 10일 세종문화회관서 30주년 콘서트 #기념 와인 출시하고 팬들 집들이처럼 초대 #김광석과 노래 내년엔 원년멤버 함께 하고파 #"이걸로 먹고 살겠단 생각 버려 오히려 오래 가"

다음달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 ‘The 30th Anniversary Concert’를 준비하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지금은 3인조로 여전히 동물원을 지키고 있는 유준열ㆍ박기영ㆍ배영길을 서울 서소문에서 만났다. 이번 공연에서는 30주년 기념 와인 패키지도 준비했다. 오랜 세월을 이들과 함께해온 팬클럽 ‘동물방’을 집에 초청해 집들이하는 콘셉트로 공연을 꾸몄다. 와인 모양을 본따 만든 공연 리플릿에는 ‘19.88%, 청춘 시절로 돌아가기에 딱 맞는 알콜분’이라고 표기돼 있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등이 수록된 동물원 1집 '동물원'의 재킷 사진. [중앙포토]

'거리에서' '변해가네' 등이 수록된 동물원 1집 '동물원'의 재킷 사진. [중앙포토]

데뷔 3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유준열은 “한 직장을 30년 다닌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5년이 지나면 새로 생긴 직장 중 절반이 사라지는데 그걸 6번이나 버텨낸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희는 정말 복 받은 거죠.”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으로 95년 6집 ‘널 사랑하겠어’부터 합류한 배영길은 “한 멤버가 이름을 바꿔서 여러 밴드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의 이름으로 꾸준히 30년을 지켜온 경우는 흔치 않다”고 덧붙였다.

몸담은 그룹을 직장으로 비유하는 이들은 직장인 밴드로도 유명하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유준열은 광학회사의 대표가 됐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박기영은 가톨릭관동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건국대 사학과를 나온 배영길 역시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로 세 사람 모두 별도의 생업이 있는 셈이다. 유준열은 “음악이 재미 없어지면 무슨 낙으로 살지란 고민에 일을 시작했는데, 이걸로 먹고 살아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원과 창단 멤버였던 김광석의 노래와 이야기로 만들어진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중앙포토]

동물원과 창단 멤버였던 김광석의 노래와 이야기로 만들어진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중앙포토]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은 모여 연습을 하고 크고 작은 공연을 다니는 이들의 지론은 확고했다. 이들에게 음악이 꽉 막힌 일상에서 숨구멍이 되어주는 것처럼, 음악을 전업으로 하려면 다른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영길은 “한 가지에 억눌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큰데, 여러 군데로 발산하다 보면 오히려 창작욕이 샘솟는다”며 “음악영화를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데, 음반ㆍ전시와 함께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30년전 ‘이화여대생들에게만 팔아도 1000장은 팔 수 있겠다’는 산울림 김창완의 주도 하에 연습삼아 녹음한 음반으로 이들이 데뷔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박기영은 “1집을 들어보면 영어회화 테이프를 녹음하는 곳에서 해서 리버브 같은 음향효과를 하나도 걸 수 없었다”며 “안쓴게 아니라 못쓴건데 드라이한 매력이 통해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2집은 1집 때 못 쓴 효과를 몰아쓴 덕에 ‘목욕탕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 같은’ 울림을 자랑한다.

올 초 발매된 '13년 만에 다시 가 본 동물원' 앨범 재킷. "멤버별로 특정 동물을 맡고 있진 않지만 하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이 임의로 그때 그때 닮은 동물을 찾기도 한다"고 밝혔다.

올 초 발매된 '13년 만에 다시 가 본 동물원' 앨범 재킷. "멤버별로 특정 동물을 맡고 있진 않지만 하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이 임의로 그때 그때 닮은 동물을 찾기도 한다"고 밝혔다.

올 초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13년 만에 다시 가 본 동물원’ 역시 이같은 세월의 흔적이 녹아있는 앨범이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의 김연미 작가가 가사를 쓰고 박기영이 작곡한 ‘다시 돌아, 봄’과 배영길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쓴 ‘바다’, 2001년 팬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주영은 씨의 가사에 유준열이 곡을 붙인 ‘안구건조증’ 등 3곡이 담겨있다. 멤버 모두가 싱어송라이터인 만큼 각자 쓴 곡은 본인이 불러야 하는 책임제다. 박기영은 “동물원에 가보면 전혀 다른 동물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우리도 개성이 뚜렷하다”며 “녹음실 3개를 잡아놓고 각자 녹음하다 옆에 가서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특별히 원년 멤버인 김광석이 영상으로 깜짝 등장한다. 박기영은 “광석이 형이 우리와 함께 노래하는 순서가 마련돼 있다”며 “내년에는 원년 멤버들도 함께 공연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첫 공연을 했던 대학로 샘터 파랑새 극장에 다시 한 번 서 보고 싶다”고 귀띔했다. 본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동물원’과 ‘그 여름, 동물원’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던 박기영은 “아무래도 저희가 캐릭터가 되서 등장하다 보니 과거의 기억과 자꾸 마주하게 된다”며 “극중 레퀴엠처럼 등장하는 ‘회귀’를 들으면 지금도 광석이 형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동물원 멤버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이 1988년 1집에 실린 포즈를 재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물원 멤버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이 1988년 1집에 실린 포즈를 재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렇다면 이들이 기억하는 동물원의 배경음악은 무엇일까. 박기영은 백마라는 동네에 다녀온 개인적 경험을 담은 ‘백마에서’를, 배영길은 비진도 가는 길에 읽은 조해일 작가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 삼아 쓴 ‘갈 수 없는 나라’를 꼽았다. “사실 대단한 경험은 아니지만 누구나 경험했을 만한 찌질하고 평범한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해서 더 많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비록 창기형은 노래는 너무 좋지만 뜨려면 지명이 ‘혜화동’처럼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핀잔을 줬지만.”(박기영) 자연 에코가 형성되는 고층 아파트 단지 등 생활에 밀착한 공간에서 더 많이 노래하고 싶다는 이들의 포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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