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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모델 수업에서 연기·춤, SNS관리 가르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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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모델 에이전시 'YG케이플러스 아카데미' 수업에는 댄스 커리큘럼이 포함돼 있다. [사진 YG케이플러스]

모델 에이전시 'YG케이플러스 아카데미' 수업에는 댄스 커리큘럼이 포함돼 있다. [사진 YG케이플러스]

요즘 방송이나 영화에서 좀 뜬다 싶은 이들에겐 공통된 스펙(경력)이 있다. 바로 '모델 출신'이라는 점이다. 훤칠한 키, 가늘고 긴 팔다리, 주먹만한 얼굴 등은 숱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 최근 2~3년 사이 모델의 연예계 진출이 늘다보니 이제는 '모델테이너(Model+Entertainer)'라는 타이틀도 생겨났다. 이들이 왜 주목 받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세계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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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제한 오히려 낮아져

국내 대표 모델 에이전시 케이플러스가 YG에 인수합병 되며 탄생한 YG케이플러스의 매니지먼트팀 김성란 이사는 "모델이 만능 엔터테인먼트로 활약할 수 있도록 공격적인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격적 육성 시스템'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일단 아카데미의 교육생 선발부터 이전과 다르다. 최소 신장이 전보다 오히려 더 낮아졌다. '여자는 170cm 이상'이 과거 불문율처럼 지켜져온 기준이라면 요즘은 167cm 정도로 유연해졌다. 에스팀 소속 교육기관 '이스튜디오' 김명지 팀장은 "런웨이 말고도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어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보인다면 키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모델테이너를 염두에 두고 모집 때부터 '수료 후 희망 영역'을 따로 파악하기도 한다.

모델 양성기관 '이스튜디오'의 연기수업. 과거 워킹이나 포즈 수업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치한다. [사진 이스튜디오]

모델 양성기관 '이스튜디오'의 연기수업. 과거 워킹이나 포즈 수업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치한다. [사진 이스튜디오]

수업 커리큘럼 역시 런웨이 모델만 목표로 하던 시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엔 워킹·포즈 연습이 80%를 차지했다면 이제는 연기·댄스·진행 등 끼를 끌어내는 수업에 60%를 할애한다. 수업 내용도 '실무 중심'이다. 가령 과거 연기 수업이 "네가 쓰레기통이 돼서 표현해봐"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기존 광고나 배역을 보고 따라해 보는 연습을 한다. 에이전시에 따라서는 '자기 마케팅 홍보'를 수업에 넣기도 한다. 에스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관리부터 '좋아요' 많이 받는 요령, 사진 잘 나오는 법, 패션 스타일링 등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강의를 한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모델의 SNS 팔로어 수거 중요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화보 모델을 하더라도 촬영 분을 개인 SNS 계정에 올려 얼마나 다수에게 노출되느냐로 영향력을 평가받는다. 방송에 출연하는 신인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얼마나 알려진 인물이냐가 캐스팅의 중요한 기준이 될 정도다. 실제로 모델 아이린은 팔로어 100만에 육박하며 해외 브랜드에서 먼저 찾는 인물이 됐고, 예능 프로 '소사이어티2'에 캐스팅 된 유리는 두 달 사이 팔로어 수를 3만~4만명 늘리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스튜디오'의 마케팅 수업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스스로를 홍보하는 노하우를 알려 준다. [사진 이스튜디오]

'이스튜디오'의 마케팅 수업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스스로를 홍보하는 노하우를 알려 준다. [사진 이스튜디오]

영화 '청년경찰' 시사회에 참석한 모델 겸 인플루언서 아이린. [중앙포토]

영화 '청년경찰' 시사회에 참석한 모델 겸 인플루언서 아이린. [중앙포토]

여기까지가 아카데미에 등록한 교육생용 시스템. 정식 오디션을 통해 뽑은 소속 모델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 일단 에이전시가 운영하는 웹 채널과 디지털 매거진 등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린다. 에스팀은 에스팀 TV, 매거진 '셀프 에스팀'을 통해 신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자체 콘텐트를 만들고 있고, YG케이플러스 역시 YG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하는 웹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 과거처럼 패션쇼나 주요 패션 잡지가 아니더라도 이 자체가 '연예인 지망생을 위한 포트폴리오'가 되는 셈이다.

이스튜디오의 뷰티, 메이크업 수업. [사진 이스튜디오]

이스튜디오의 뷰티, 메이크업 수업. [사진 이스튜디오]

과거엔 런웨이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굳힌 톱모델들이 연예 활동에 나섰다면, 이같은 시스템을 통해 요즘에는 데뷔와 거의 동시에 연예계에 발을 담그는 변화가 나타났다. 남주혁은 고작 데뷔 6개월 만에 케이블TV 드라마의 연기자로 얼굴을 비쳤고, 방주호 역시 2015년 가을 처음 패션쇼 무대에 선 뒤 같은 해 웹예능 '미스터 츄 1' 출연했다. 에스팀 홍은주 실장은 "멤버를 모으고 컨셉트를 잡아 그룹을 만드는 아이돌의 경우 연습생부터 데뷔까지 몇 년씩 걸리고, 또 하나의 캐릭터를 잡는데도 시간이 드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고 말했다.

모델 데뷔와 거의 동시에 방송에 등장한 남주혁. 최근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 주연으로 출연 중이다. [사진 하백의 신부 홈페이지 캡처]

모델 데뷔와 거의 동시에 방송에 등장한 남주혁. 최근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 주연으로 출연 중이다. [사진 하백의 신부 홈페이지 캡처]

등장만 해도 화보…비주얼 시대의 승자 

교수부터 정치인까지 누구나 방송인이 되는 시대, 게다가 외모와 끼를 겸비한 스타 지망생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모델테이너가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양성 시스템 덕분일까.
모델계나 방송계가 가장 먼저 꼽는 요인은 역시나 '남다른 기럭지'다. 잘생기고 예쁘고,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수준을 넘어서는 평균 이상의 키와 비율, 만화같은 가늘고 긴 팔다리가 강력한 무기다. 다들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이게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가 싶지만, 답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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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이성경은 연기 외 음악적 재능이 방송계에 알려져 있다 [사진 방송캡처].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이성경은 연기 외 음악적 재능이 방송계에 알려져 있다 [사진 방송캡처].

지금은 비주얼 시대다. 방송이나 영화뿐 아니라 SNS, 웹 드라마, 유튜브 등 영상 콘텐트가 쏟아지고, 저마다 '패션 화보 같은 그림'을 만들어 낼 인물을 찾는다. 남주혁을 처음 배우로 캐스팅한 tvN드라마 '잉여공주'의 백승룡 PD 이야기도 비슷하다. "당시 대본에 나온 만화 같은 외모가 현실에 그대로 있어 보자마자 캐스팅했다"면서 "남주혁 말투에 부산 사투리가 남아 있어 아예 배역을 그에 맞게 바꿨다"고 말했다. 연기력이나 발성을 문제삼기는커녕 아예 캐릭터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귀하게 모셨다는 얘기다. 방송계에서 "연기나 노래는 가르치고 연습하면 늘지만 기럭지는 늘릴 도리가 없다"며 모델 예찬을 서슴지 않는 건 그래서 냉정하지만 현실적이다.

'갑자기 히어로즈'에 출연한 모델테이너 주우재. 특유의 입담으로 예능 섭외 1순위다. [사진 방송캡처]

'갑자기 히어로즈'에 출연한 모델테이너 주우재. 특유의 입담으로 예능 섭외 1순위다. [사진 방송캡처]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자였던 모델 권현빈. 소속사 오디션 중 랩 실력이 두드러져 방송에 문을 두드렸다. [사진 YG케이플러스]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자였던 모델 권현빈. 소속사 오디션 중 랩 실력이 두드러져 방송에 문을 두드렸다. [사진 YG케이플러스]

모델 스스로도 달라졌다. 과거 무표정한 카리스마를 모델이 어필하는 특기로 삼았다면 영상 콘텐트가 주류가 된 이제는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세운다. 가령 이성경은 SNS에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포스팅해 화제가 됐고, 입담 좋기로 소문난 주우재는 아예 개인 방송 경력을 쌓은 덕분에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 모델로 꼽힌다.
그런가하면 권현빈은 모델 활동 중 소속 에이전시인 YG케이플러스 오디션에서 선보인 랩 실력을 인정 받아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했다.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에 모델 에이전시가 소속 모델을 내보내는 진풍경을 보게 된 배경이다.
예능 프로 SNL 권성욱 PD는 "매 시즌 개성 있는 고정 출연자를 새로 뽑는데 이번에는 최종 오디션에 오른 40%가 모델 출신일 정도로 모델 중에 끼 많은 이들이 많다"며 "고학력·유학파로 상식·퀴즈나 영어를 장기로 삼는 이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YG케이플러스 김성란 이사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은 어릴 적 이미 댄스·악기·마술 등을 배우는 '엔터 사교육'에 익숙한 세대"라고 분석했다.

배정남은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다 최근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 YG케이플러스]

배정남은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다 최근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 YG케이플러스]

달라진 팬덤 문화도 모델테이너 전성시대에 한 몫 한다. 패션에 관심 있는 10대들 중 연기자나 가수 등 연예인보다 모델에 더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TV에 나오는 아이돌·배우보다 웹 콘텐트나 화보에서 눈에 띄는 모델을 찍어 후원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남이 키운 스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발견하고 알아봤다는 뿌듯함이 여느 팬들과 다른 점이다. 케이블방송·모바일 콘텐트에 출연하는 모델 김승환 역시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팬들이 만든 인스타그램만 10여 개에 달한다. 그는 "포털에 팬 카페가 개설돼 실시간으로 팬들과 채팅을 한다"면서 "기획사의 관리 아래 거리를 두는 여느 스타보다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모델테이너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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