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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광주시민은 베트콩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광주시민은 베트콩이었다

“조종사들은 출격 대기해.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1980년 5월 21일
수원 제10전투비행단

공군 전투기 파일럿이었던 A씨는
공대지 실무장까지 출격대기를 했습니다

군생활 내내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들의 폭격 목표 지점은 ‘광주’

“미군 하사로부터 한국 공군이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광주에 머물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말입니다

당시 공군 대대장은 북한을 대비했던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CIA 자료엔 당시 북한군 동향에 특이점이 없다고 쓰여 있습니다

폭격의 대상이자 살육의 현장…

80년대 군부가 광주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군부 실세 전두환·노태우는 베트남전 경험이 있다.
그들은 점령군인 양 광주 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
전남을 별개 집단으로 간주했다.”

“학생 시위의 규모는 아주 작았다.
학생 지도자가 포위된 채 대검에 찔렸다.
식당 주인은 학생들을 숨겨주도 총에 맞았다.
광주 시민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한국인에게 공개를 금지한다’는 단서가 붙었던
미국 국방정보국 비밀문서에 담긴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월남전을 연상시키는 학살의 현장이었던 80년대 광주에서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드러날수록 더 추악해보이는 진실의 민낯

그는 언제쯤 자신의 죄상을 사죄할까요

기획: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제작:  오다슬 인턴 oh.daseul@joongang.co.kr
       조성진 인턴 cho.seo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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