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똥학교' 이름 바꾸고 학생회장에 출마해 더 좋은 일 할래요”…대변초등 교명 변경공약 실천한 초등생 부회장의 또다른 도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친 김에 내년에 6학년이 되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싶어요. 교명 변경 공약이 최종 실현되면 학교 친구들을 위해 또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요.”
부산시 기장군 대변리에 위치한 대변(大邊)초등학교 학생부회장 하준석(11·5학년) 군이 밝힌 당찬 포부다.
하군은 대변초등이 1963년 기장국민학교 대변분교에서 대변국민학교로 독립한 지 54년 만에 교명 변경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대변초등은 이르면 연말에 용암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학교 이름이 바뀐 적은 있지만,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이 학교는 과거에도 교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일부 동문과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부산 대변초등 부회장 하준석 군, 교명 변경 작은 민주주의 실천 #주민과 동창회 등 적극 설득해 교명 변경의 결정적 계기 만들어 #4000명 서명 받아, 반대하던 동창회와 주민들도 찬성 돌아서 #학교운영위-->부산시청-->부산시의회 절차만 남겨 #“내년 학생회장에 출마, 친구들 위해 또 다른 일하고 싶어”

교명 변경을 이끈 하군은 지난 2월 학생부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교명 변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축구가 특기이자 취미인 하군은 초등3년 때 기장군수배 축구대회 나갔다가 다른 학교 친구들이 ‘똥학교’, ‘변기 학교’로 놀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아지고 상처 받는 친구들이 많다고 확인한 하군은 오히려 교명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하준석 대변초 부학생회장이 18일 학교 앞에서 교명 변경을 위해 노력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하준석 대변초 부학생회장이 18일 학교 앞에서 교명 변경을 위해 노력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하군은 부회장에 당선되자마자 교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지난 4월 열린 기장 멸치 축제에 서명을 받으러 나갔다. 그는 “낯가림이 조금 있어서 처음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3명의 서명을 받고 나니깐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군은 축제 기간3일 동안 40여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러자 동창회와 학부모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창회는 지난 4월 17일부터 보름간 2800명의 졸업생 가운데 연락처가 있는 1000여명을 대상으로 교명 변경 설문조사를 했고, 83%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준석 대변초 부학생회장이 18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학교에서 교명 변경을 위해 노력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2017.8.18.송봉근)

하준석 대변초 부학생회장이 18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학교에서 교명 변경을 위해 노력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2017.8.18.송봉근)

하군은 설문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반대하는 동문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명 변경의견수렴 공청회에 참가해 “‘똥학교’라고 놀림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연설했다. 또 지난 6월에는 동문 선배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 교명 변경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같은 달 기장 군수를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군이 뛰어다니는 동안 학생회·학부모회·동창회는 곳곳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금까지 4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동창회 이사회는 지난달 21일 교명을 변경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19일에는 새 교명으로 ‘용암초등학교’로 정했다. 오는 25일 대변초등 운영위원회에서 새 교명을 최종 승인하면 부산교육청 교명선정위원회 심의를 28일 받을 예정이다. 이후 부산시의회가 부산시 조례를 개정하면 새 교명이 확정된다. 올해 말부터 새로운 교명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활 속 민주주의 공약을 사실상 실천해 모범을 보인 하군은 인터뷰를 하면서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해서 기분 좋다”며 활짝 웃었다. 수학·영어·체육을 좋아하는 하군은 반에서 1~2등을 할만큼 공부도 잘한다. 장래희망은 육군 장교다.

사실 대변초등은 기장군 대변리(대변포)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는데 한글 발음이 대변(大便)을 연상시켜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준다지만 알고보면 지명 유래에 부정적 의미는 없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곳에는 나라에 바치던 공물창고였던 대동고(大同庫)가 있어 '대동고가 있는 해변 포구'라는 의미를 담아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로 불렸다. 이를 줄여서 '대변포'로 불렀다고 한다. 새로운 학교명은 1914년 기장군 읍내면 용암(龍岩)동과 무양(武陽)동 일부가 합쳐져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가 됐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