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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계란을 이렇게 먹기 어려워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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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올해는 계란 사 먹기가 왜 이리 힘든지. 2016년 말부터 이어진 조류독감(AI) 여파로 지난 10년간 큰 변동 없이 한 판(30개, 특란 기준)에 5000원대를 유지하던 계란값이 연초부터 고공행진을 거듭, 무려 1만원에 육박하더니 이번엔 살충제 성분 검출로 계란 유통이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껑충 뛴 가격 탓에 올 들어 팔자에도 없는 미국 계란, 태국 계란까지 맛본 보람도 없이 산란계 살처분으로 인한 공급 부족에다 살충제 사태마저 겹치면서 앞으로 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아예 식탁에서 사라질 판이다.

계란은 없어도 그만인 평범한 식자재가 아니다. 필요한 영양 성분을 다 갖춘 완전식품인 데다 맛도 좋아 한국인의 밥상에서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빵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가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니 이러다간 계란 한 줄(10개) 값이 소고기 한 근(0.6㎏)과 똑같았던 광복 직후의 고가 음식 반열에 다시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계란값이 지난 10년 동안 워낙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탓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계란만큼 드라마틱한 가격 부침을 겪은 식자재도 드물다. 양계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계란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다 국산 씨닭 개발에 성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뚝 떨어졌다. 심지어 1979년엔 경기침체로 계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계란값이 형편없이 폭락하기도 했다. 양계업자들이 스스로 감산을 결의하고 생산가보다 낮은 값에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까지 했는데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격을 붙잡지 못했다. 이 계란 파동은 몇 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저온 저장시설마저 전혀 없어 당장 팔지 못하면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기에 가격 조절이 더 어려웠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란은 대표적인 값싼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10년 전 중국에서 가짜 계란이 나왔다고 했을 때 다들 놀랄 수밖에. 중국인의 ‘남다른’ 스케일에 입이 벌어지는 한편 그렇게 싼 계란을 가짜로 만들면 뭐가 남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계란값이 급등하다 못해 식탁에서 사라질 위기를 겪다 보니 정말 인공 계란이라도 먹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싶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