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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뱅크통장 만들었다고 카카오뱅크 가입에 한 달? ''금리 쇼핑' 막는 계좌개설 규제, 이거 나만 불편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지털 금융 시대라는데. 계좌 개설은 한달 한 건으로 묶여있다.

디지털 금융 시대라는데. 계좌 개설은 한달 한 건으로 묶여있다.

[란란 기자의 프로불편러]
'금리 쇼핑' 막는 계좌개설 한 달 1건 규제

금융당국의 대포통장 막기 위한 규제에 걸려 #'20 영업일 계좌개설 2건'이면 거래목적 증빙 필수 #지점 없는 인터넷은행은 무조건 한달 간 개설 불가 #디지털금융 시대에 융통성 떨어지는 규제가 발목 #

‘계좌개설까지 7분 만에 뚝딱’.

이미 400만 명 가까이 선택했다는 카카오뱅크 관련 기사에서 여러 번 등장한 제목이다. 비대면 계좌개설의 편리함과 신속함을 표현하는 문구다.

명색이 은행 출입기자인 나는 카카오뱅크 계좌개설에 한달이 걸리게 생겼다. 금융지식이 제법 있다고 자부했는데 실전에서는 허당이었다. 불편할 뿐 아니라, (비록 몇푼 안 되긴 하지만) 금전적 손해(=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대이익 상실)도 발생할 판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사를 쓴다. ‘란란 기자의 프로불편러’ 시리즈 1탄이다.(참고로 2탄은 고란 기자가 대기 중이라서 제목이 '란란 기자'이다)

시작은 수중에 억대의 현금이 생기면서다. 집 팔고 무주택자가 되면서 쥐게 된 돈이다. 그런데 주식을 하긴 불안하고, 집은 내년 봄 이후에나 사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정했다. 6개월짜리 정기예금에 넣어두기로. 최근에 취재를 위해 통화했던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조언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금리가 오를테니, 지금은 6개월 정도 단기 정기예금에 일단 돈을 넣어두고 이후 갈아타라는 게 조언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13일 ‘금융상품 한눈에(finlife.fss.or.kr)’ 사이트에 접속했다. 금감원이 운영하는 금융상품 통합 비교공시 서비스다.

은행권 정기예금을 금리 순으로 비교하자,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은행 중엔 6개월 정기예금 금리가 가장 높았다. 그래, 금리 연 0.5%포인트 차이면 이자 차이가 10만원(5000만원 6개월 만기 기준)이 넘는데. 10만원이 어디냐. 애플리케이션(앱)만 다운 받아둔 케이뱅크에 가입키로 했다.

이건 새로 나온 케이뱅크 체크카드.

이건 새로 나온 케이뱅크 체크카드.

신분증 사진을 찍고, 내 명의 타행 계좌로 1원을 이체하고.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입출금통장 개설에 금세 성공했다. 마침 ‘코드K정기예금 10회차’가 1인 1계좌 5000만원 한도로 판매 중이었다. 제휴사가 제공하는 코드를 입력하면 다른 조건 없이 우대금리를 주는 인기 상품이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코드K정기예금’을 넣으면 나오는 10자리 코드를 입력하고 가입하자 우대금리 포함 연 1.9%(6개월 만기 시)로 한도를 꽉 채워 가입했다.

케이뱅크 정기예금, 우대금리 받고 성공적으로 가입.

케이뱅크 정기예금, 우대금리 받고 성공적으로 가입.

첫 계좌 개설부터 정기예금 가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자신감이 붙었다. 내친 김에 카카오뱅크도 가입키로 했다. 6개월 정기예금 금리는 다소 낮은 편이지만(1.5%) 1년 만기로 하면 기본 금리가 2.0%로 좋은 편이다. 여기에도 일부 현금을 넣어둬야겠다 싶었다. 역시 다운만 받아둔 카카오뱅크 앱에 들어가 실명확인과 휴대전화 본인 인증을 거쳤는데.

이게 뭐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입출금통장을 만든 날로부터 20영업일이 지나야 새로운 입출금통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문구가 나오고 끝이다. 무슨 말이지? 대포통장? 20영업일?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보니, 대포통장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20영업일 안엔 입출금통장 개설을 제한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이 띄엄띄엄 보인다.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사이트를 뒤졌지만 그런 규정은 찾을 수 없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의 대포통장 담당 팀에 직접 전화했다. “팀장님. 카카오뱅크가 대포통장 때문에 20영업일 안에는 입출금통장을 못 만들어준다는데요. 이런 규제가 있었어요? 이거 전 금융권에 공통 적용되는 규제에요?”

그러자 예상과는 좀 다른 답이 돌아왔다.
“원천적으로 금지한 게 아니에요. 20영업일 이내에 입출금통장을 2개 만들 때는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라는 거죠. 계좌개설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카카오뱅크는 안 해주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우린 막은 적 없다. 알아서 잘 하라고 했을 뿐이다. 막은 건 은행이다’라는 논리였다. 아니, 원래 금융당국이 ‘알아서 잘 하라’고 하면 그게 ‘사고 칠 일, 하지 말라’는 뜻 아니었던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다시 카카오뱅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대기인원 28명. 상담이 지연돼 죄송하다는 안내 방송을 정확히 15분 기다린 끝에, 상담원과 연결됐다.

“제가 케이뱅크에서 입출금통장을 오늘 만들었더니, 카카오뱅크 계좌개설이 20영업일 간 안 된다는데요. 이거, 어떻게 서류로 금융거래 목적을 증빙하면 계좌개설 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없나요?”
  내 질문에 상담원은 친절하지만 단호한 답을 내놨다. “죄송합니다만 별도로 처리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별도로 지점이 있지 않아서 예외 없이 안 됩니다.”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너 한달 뒤에나 보자.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너 한달 뒤에나 보자.

20영업일은 토,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20일을 뜻하기 때문에 사실상 한달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득 혹시 저축은행은 좀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금리 면에서는 카카오뱅크보다는 저축은행이 한수 위다. 애정하는 금융앱인 저축은행중앙회의 ‘SB톡톡’에 접속해 예금 금리를 비교해봤다. 부산에 있는 고려저축은행이 6개월에 연 1.9%로 케이뱅크와 같았다. 가입을 위해 또 신분증을 찍고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마치고, 모든 약관에 동의했다. 그리고.

짧고 굵은 메시지로 계좌계설 거부하는 SB톡톡 앱.

짧고 굵은 메시지로 계좌계설 거부하는 SB톡톡 앱.

계좌개설을 거부 당하다 

한 마디로 계좌개설을 거부 당했다.
따라서 이제 내게 남아있는 정기예금 추가 가입 방법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1) 한달을 기다린 뒤에 저축은행이나 카카오뱅크에 계좌개설을 하고 정기예금을 가입한다.
→한달 동안 입출금 통장에서 현금을 묵혀야 한다. 그만큼 이자 면에서 손해다. 아깝다.

 2) 기존에 가입돼 있는 주거래은행의 예금상품 중 그나마 금리가 높은 걸 찾아서 가입한다.
→내 주거래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6개월에 연 1.4%. 이보다 0.5%포인트 금리를 더 주는 상품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여기에 목돈을 넣어두려니 속이 쓰리다.

 3)이미 계좌를 만든 케이뱅크의 정기예금 다음 회차 모집을 며칠 기다린다.
→코드K정기예금은 회차별로 1인 1계좌다. 이날 10회차를 한도 꽉 채워 가입했으니 며칠 더 기다리면 11회차를 또 가입할 수 있다. 금리가 계속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그나마 이게 합리적.

혹자는, 그래 봤자 고작 월 2만원도 안 되는 돈(5000만원 정기예금 가입 기준)을 벌겠다고  여러 금융회사에 5000만원씩 쪼개서 예금을 가입하느냐고 타박한다.

하지만 금리차이를 모르면 몰랐을까. 이렇게 예금 금리가 클릭 몇 번에 비교되고, 부산에 있는 저축은행도 직접 찾아갈 필요 없이 안방에서 가입되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 그냥 가까운 아무 시중은행이나 가서 턱하니 억대의 정기예금을 한방에 가입하지는 못하겠다. 10분 남짓을 투자해서 월 2만원 가까이 벌 수 있다는데,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는 게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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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포통장과 보이스피싱 근절, 중요한 사회 문제인 거 안다. 그런데 창구도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에 ‘20영업일 안에 입출금통장 추가로 만들어주려면 반드시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라’고 지침을 주면 그게 결국 만들어주지 말란 소리 아닌가. 금리를 비롯한 가격 경쟁, 서비스 경쟁을 촉발해 소비자 효용을 높인다는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나.

푼돈에 연연하는 금융소비자로선 이토록 융통성 떨어지는 금융 규제가 약속할 따름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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