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트럼프와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참 묘한 일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과 해마다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북한이 자웅을 겨루다시피 서로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먼저 ‘화염과 분노’를 던지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괌 포위사격’으로 맞받아쳤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세계 국방비 지출은 6110억 달러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는 2위 중국(2160억 달러)부터 3위 러시아(692억 달러)를 거쳐 8위 일본(461억 달러)까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불행히도 SIPRI에 북한의 국방비 자료가 없다. 북한이 공개하지 않아서다. 최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북한 국방비는 83억 달러로 추정된다. 엄밀하진 않은 비교지만 미국이 북한보다 74배 정도 많은 셈이다.

이런 큰 격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이 ‘말 폭탄’을 서로 던지며 싸우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미는 2012년 2·29 합의 결렬 이후 미국이 ‘전략적 인내’로 선회하면서 공식적인 회담을 하지 못했다. 반민반관의 1.5 트랙 회동은 여러 차례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미국이 북한을 제대로 몰라 어떻게 할지 헤매면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북한을 ‘블랙홀’이라 칭하며 “전 세계적으로 첩보활동이 가장 힘든 나라”라고 털어놨다. 70년대 초 CIA 서울지부 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대사도 “전 세계에서 이만큼 장기적으로 첩보 활동에 실패한 나라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미국 정보 당국자들의 이런 생각은 역사적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8년 1월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11개월 동안 협상을 벌이다 결국 미국이 사과문에 서명하면서 해결됐다. 도끼 만행 사건은 주한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살해됐는데도 김일성의 ‘사과’ 없이 ‘유감’ 표명으로 끝났다. 두 사건 모두 항공모함이 출격하는 등 전쟁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북한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

김정은과 트럼프도 이런 전철을 밟을까. 북·미가 조심스럽게 탈출구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AP통신도 북·미가 지난 수개월 동안 외교 라인의 비밀 접촉을 이어왔다고 보도했다. 내일은 광복 72주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지금의 8월 위기설에만 집착하지 말고 위기 그 이후도 고민하길 바란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