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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적정예비율 ‘22%→20%’로 낮춘다…정부 탈(脫)원전 논리 뒷받침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설비계획 초안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진우 전력정책심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설비계획 초안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진우 전력정책심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인 전력 적정예비율이 올해 연말 수립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에서 최대 20%로 낮아진다. 지난달 발표된 전력 수요 전망에 이어 적정예비율도 기존보다 줄어듦에 따라 8차 기본계획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부합해 확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회의를 열고 8차 기본계획에 들어갈 발전 설비계획 전망치 초안을 공개했다. 심의위는 2030년에 필요한 전력 적정예비율을 기존의 22%에서 20~22%로 낮췄다.
적정예비율은 전력수요에 대응해 정부가 예비로 전력을 얼마 더 생산할 지를 나타낸다. 전력수요가 100이고 적정예비율이 20%라면 총 발전량은 120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전력수요 워킹그룹은 2030년 최대 전력수요가 101.9GW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2030년에 확보해야할 전력량은 122.28GW다. 심의위는 정정예비율이 1%p 하락할 경우 발전용량이 1000㎿(1GW)인 발전소 1기를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망했다. 원전 2기분의 발전 시설을 덜 확보해도 된다는 의미다.

원전 2기분 설비용량 감축효과 #정부 탈원전 정책 뒷받침 논리 지적도 #2030년까지 5~10GW 신재생ㆍLNG설비 늘려 #예측 못한 수급불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심의위가 적정예비율을 기존 전망보다 낮춘 이유는 우선 전력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수요전망 워킹그룹의 2030년 최대전력수요는 7차 계획 때 보다 11.3GW 줄어든 수치다. 수요 전망에 가장 큰 영향(70%)을 미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연평균 전망치가 3.4%에서 2.5%로 감소한 탓이 크다. 적정예비율은 발전소의 정비나 고장에 대응하는 ‘최소 예비율’과 향후 전력 수요 변동과 발전소 건설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한 ‘수급 불확실 대응 예비율’로 구성된다. 수요전망이 감소하면 수급불확실 예비율이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심의위의 전망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침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지난달 발표된 국정기획자문위의 100대 국정과제에 따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가 가동 중단되고, 신규 원전 6기 건설이 백지화된다고 가정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30년까지 20%로,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역시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고 계산했다. 적정 예비율 전망이 정부 정책에 의도적으로 꿰맞춘 전망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심의위는 발전소 정비나 고장으로 인해 별도로 확보해야 하는 예비 전력은 원전이 LNG보다 더 크다고 설명한다. LNG 발전은 예방정비와 고장 정지 등으로 1년의 약 12%인 44일 동안 가동이 정지된다. 반면 원전은 1년의 약 20%인 76일 동안 가동이 정지된다. 김진우 전력수급기본계획위원장(연세대 교수)은 “원전을 줄이고 LNG를 늘리면 확보해야 할 예비전력이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공론조사 중인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중단 여부,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필요한 보완 설비 확충 계획 등은 전망치에 확정해 넣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적정예비율도 ‘20~22%’로 범위를 잡아 전망했다. 대신 수요예측 오차가 적은 단기 전망(2017~2025년)에서는 14~18% 의 예비율도 충분할 것이라고 봤다. 그 이후부터는 수요예측 오차가 커지므로 예비율을 높게 잡아 최종적으로 20~22%로 정했다. 7차 계획 때는 15년의 적정 예비율이 매년 같은 비율이었다.

심의위는 2030년까지 5~10GW의 발전설비를 새로 지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김진우 위원장은 “필요한 발전 설비는 대부분 2026년 이후 생긴다”며 “남은 8년 동안 신재생이나 LNG 발전소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정예비율을 낮추는 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예비율을 급격히 낮추면 전력수요가 갑작스럽게 증가할 경우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0년 5차 수급계획에서 적정예비율을 18%로 2%p 낮췄다가 2011년 ‘9ㆍ15 대정전’을 겪은 뒤 2013년 6차 수급계획에서 22%로 올린 바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사물인터넷 등이 더 보급되면 전력수요 폭증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업무가 디지털화된 상황에서 2011년과 같은 대규모 정전사태가 나면 파급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재생에너지가 정부 예측대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심의위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이 올해 17.2GW에서 2030년 62.6GW까지 증가할 것으로 봤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을 고려해 피크기여도(태양광 15%, 풍력 2%)를 적용해 실제 예비율엔 총 5GW 정도의 발전량만 반영했다.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는 여전히 대책이 부족하다. 심의위원인 김욱 부산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전력은 현재 1.6GW 내외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완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김진우 위원장은 “수요가 적을 때 전력을 저장해 부족할 때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이 필요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번 설비전망 초안은 확정안은 아니다. 워킹그룹은 향후 토론회와 세미나, 각종 통계 변수 등을 고려해 최종 적정예비율을 결정할 계획이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각전력수요와 설비전망, 수요관리 전망 수치를 종합해 10월쯤 기본계획 초안을 만든 뒤 올 연말쯤 확정할 계획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전력수급기본계획=산업통상자원부는 15년 단위의 중장기 전력수요와 공급 계획(전력수급기본계획)을 2년마다 세우고 있다. 계획 수립의 기초는 ‘전력수요’다. 전력수요 전망을 토대로 발전소 등 전력설비(공급)건설의 틀을 짠다. 전문가와 전력 관계자 등으로 구성돼 ‘수요전망’ ‘전력설비’ ‘수요관리(전기소비 절약)’의 세 가지 워킹그룹을 통해 전망치 예측 작업이 진행된다. 이 세 회의의 활동 결과를 종합한 뒤 8차 기본계획 초안이 만들어 진다. 산업부는 이 초안을 세미나, 공청회 등을 거쳐 검토한 뒤 올해 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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