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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기영, 11년 만의 사과로 자격 논란 잠재울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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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과학기술계와 정치권 등에서 임명 논란에 휩싸인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는 어제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과학기술계 원로, 기관장, 관련 협회 주요 인사 등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박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사태’의 핵심 관련자다.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재직 시 황 전 서울대 교수가 사용한 배아줄기세포가 오염된 사실, 연구원이 난자를 기증한 의혹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거나 정반대로 보고해 사태를 키웠다. 그러면서 황 전 교수의 사이언스지 조작 논문에 아무 기여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황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연구과제 2개를 위탁받으며 정부 지원금 2억5000만원도 받았다. 공직자는 고사하고 연구자의 기본 자질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대학 교수로 돌아가 11년을 보냈다. 어제야 겨우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 신중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너무도 늦은 사과, 진정성 없는 사과다. 본인이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면 본부장직을 맡는 대신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기다려야 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인식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저녁 박 본부장이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있지만 본부장 자리에 적임자”라며 임명 강행 의지를 밝혔다. 과학자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떤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어느 모로 봐도 이와 어울리지 않는 박 본부장 임명은 철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