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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청년 버핏' 박철상씨 '이카루스 비상'에서 추락까지…진짜 손에 쥔 건 1할도 안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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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씨. [중앙포토]

박철상씨. [중앙포토]

주식 투자로 400억원을 벌어 '청년 버핏'이라고 불려 온 박철상(33·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 그가 주식으로 벌었다고 알려진 돈이 실제보다 수십 배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8일 드러났다.

경북대 4학년 재학 33세 박씨는 그동안 '청년 버핏'불려 #1500만원 10년만에 400억 만들어 유명해진 박씨 #주식투자가 신준경씨 "그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 #8일 SNS통해 주장…"10억원 기부도 다른 사람 돈" #7일 박씨와 신씨가 만나 주식 투자 논란 대화 #8일 오전 10시 입장 밝히겠다던 박씨 연락 안돼 #언론 인터뷰에서 박씨 "내가 실제 번돈

앞서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1·구속 기소)씨의 실체를 밝혔던 주식 투자가 신준경(44)씨가 이번에도 결정적 '저격수' 역할을 했다.

박씨의 이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3년 1월. 재학 중인 경북대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다. 평범한 지방 국립대 재학생이 거액의 돈을 기부했다는 소식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2년 뒤인 2015년 2월 박씨는 한 번 더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번엔 기부액이 4억5000만원(5년 약정)으로 늘었다. 이때부터 언론은 그의 인생 스토리에 집중했다.

지난 2일 김상동 경북대 총장을 만나 향후 5년간 13억 5천만원을 기탁하기로 한 박철상씨[사진 경북대 홈페이지]

지난 2일 김상동 경북대 총장을 만나 향후 5년간 13억 5천만원을 기탁하기로 한 박철상씨[사진 경북대 홈페이지]

대학 입학 후 아르바이트로 번 1000여만원으로 10년 만에 400억원을 만들었다는 '성공신화'도 이때 만들어졌다. 중학교 때 모의투자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홍콩 투자사 인턴으로 스카우트됐다는 이야기도 화젯거리였다. 박씨는 단숨에 '주식 투자로 수백억원을 번 대학생'이란 호칭을 얻었다.

같은 해 7월 박씨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대학생 신분으로는 최초였다. 이듬해 미국 포브스지의 '2016 아시아 기부 영웅'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젊은 나이에 이웃을 위한 나눔에도 앞장서는 '기부 천사' 이미지까지 얻었다. 이런 이미지 덕분인지 박씨는 강연 무대에 자주 올랐다.

전남대에 장학기금 6억원 기탁을 약속한 경북대 학생 박철상씨(오른쪽) [사진 전남대]

전남대에 장학기금 6억원 기탁을 약속한 경북대 학생 박철상씨(오른쪽) [사진 전남대]

지난 5월 25일 울산시교육청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박씨는 "(주식에서) 경영학·경제학은 기본 베이스일 뿐 정치나 외교·심리·종교·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주식 투자를 통해 10년 만에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년간의 주식 투자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준경씨는 지난 3일부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박씨의 주식 투자 성공 스토리에 의혹을 제기했다. 신씨는 "실제로 400억원의 자산을 주식으로 벌었다면 박씨는 증거를 제시해 달라"며 포문을 열었다.

박씨는 쏟아진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SNS에 "엊그제부터 저에게 수익 계좌를 보여 달라고 아이처럼 떼를 쓰는 분이 계신데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발끈했다.

박철상씨가 지난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반박글.

박철상씨가 지난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반박글.

지난 6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씨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활동을 하기도 바쁜데 이런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려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의혹 제기는 연일 계속됐고 결국 7일 신씨와 박씨는 서로 만나 논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결국 신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박씨가 주식으로 번 돈이 400억원이 아니라 몇 억원 정도"라며 "박씨의 기부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이름으로 기부했다"고 8일 전격 폭로했다.

신씨는 이어 "그는 후배들에게 영웅으로 남고 싶었고 여러 인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신분 상승에 취해 있었다"며 "그 청년(박씨)은 본질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약간의 허언증에 사회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본인이 심취해 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온라인 주식 투자 카페 '가치투자연구소' 김태석 대표도 "(박씨가) 24억원을 기부한 것은 맞지만 그중 10억원은 자신의 기부 철학에 동참한 몇몇 분이 보내 준 돈을 자기 이름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식투자자 김태석 대표가 카페에 올린 게시물.

주식투자자 김태석 대표가 카페에 올린 게시물.

결국 박씨는 이날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사실상 대부분 인정했다. 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주식으로 번 돈이 14억원 정도"라며 "400억원 자산을 (제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간 관련 질문을 피하고 이를 바로잡지 않았던 것은 다 제 불찰"이라며 백기를 들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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