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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한 첫 헌법재판관 후보...민변·법여성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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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6개월 이상 ‘8인 체제’였던 헌법재판소의 아홉번째 재판관 후보자로 '민변'과 '법여성학' 카드를 선택했다. 8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유정 변호사(49ㆍ사법연수원 23기)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처음으로 선택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다. 앞서 문 대통령이 지명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이미 헌법재판관 신분이었다.

2007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무죄 선고 이끌어 #성평등 ㆍ과거사 관련 사건 등 다수 공익인권 사건 변론

이 후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여성위원장을 지낸 이유정 변호사(49ㆍ사법연수원 23기)를 택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두 번째 민변 출신 변호사가 된다. 첫 사례는 송두환 전 재판관(2007년 3월~2013년 3월)이었다.

이유정 변호사

이유정 변호사

1995년 개업한 이 후보자가 ‘민변 변호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남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2007년 1월23일 무죄 판결을 받아내면서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부가 도예종ㆍ우홍선씨 등 8명을 유신반대 운동을 주도하던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목해 내란 예비ㆍ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피고인들은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해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 관련 기록을 처음 접했던 순간의 느낌을 이 후보자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법이라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사형 집행을 당한 여덟 분의 영혼은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 같았다.”(『배운 녀자』,2011, 씨네21북스)

무죄 선고를 받은 날 이 후보자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같은 책에 “법과 역사와 죽음에 대해 두서없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남겼다.

이 변호사는 법여성학자로도 유명하다. 2007년부터 1년 여 동안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한 그는 2010년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사법관계에서 평등권의 적용에 관한 연구 : 성차별소송사건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이 변호사의 변론 경험이 바탕이 됐다. 1999년 결혼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강요받았다고 호소하는 대한제분 여성 근로자들을 대리해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결정 취소해 달라”는 회사 측과 맞섰던 ‘대한제분 결혼 퇴직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 이 사건은 젠더법과 노동법 연구의 소재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최근까지 이 변호사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는 등 다수의 공익ㆍ인권 소송에서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변호사의 남편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지난 해 3월 개업한 사봉관(49)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다. 사 변호사는 2006~2009년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연구관으로 일하기도 해 부부가 모두 헌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 변호사를 잘 아는 한 동료 변호사는 “과거사ㆍ젠더ㆍ노동 분야에 두루 식견과 경험을 쌓은 준비된 헌법재판관 후보”라고 평가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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