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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성태원의 날씨이야기(6) 더워죽겠는데... 오늘부턴 가을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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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7일)를 며칠 앞둔 2일 강원 강릉시 외곽 마을에서 방울새들이 잘 익은 해바라기의 씨를 서로 먹으려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입추(7일)를 며칠 앞둔 2일 강원 강릉시 외곽 마을에서 방울새들이 잘 익은 해바라기의 씨를 서로 먹으려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8월 7일(월)은 가을로 들어선다는 절기, 입추(立秋)다. 24절기 중 13번째이자 6개 가을 절기 중 첫 번째다. 앞으로 보름 간격으로 입추~처서(處暑, 8월 23일)~백로(白露, 9월 7일)~추분(秋分, 9월 23일)~한로(寒露, 10월 8일)~상강(霜降, 10월 23일)을 거치며 가을이 깊어 간다.

오늘 입추, 24절기는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 #절기만 가을이니, 온열질환엔 늘 주의해야

조상들은 이때가 되면 가을 채비를 시작했다. 특히 무, 배추를 심어 겨울 김장에 대비했다. 김매기가 끝나 모처럼 농촌이 한가해지는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말이 전해진다. 간혹 접하는 서늘한 바람과 귀뚜라미 소리를 위로 삼아 한여름 무더위를 견뎌 냈다. 그래도 한결같이 주곡인 벼농사가 잘 되길 빌었다. “귀 밝은 개 벼 자라는 소리 듣는다.”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입추 즈음에 이런 익살스러운 속담이 많이 회자됐다. 벼가 얼마나 잘 자랐으면 개가 그 소리를 들을 정도였을까.

그런데 장마가 끝난 폭염 절정기에 가을로 접어든다니! 지금 우리네 계절 감각으론 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이런 차이를 낳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4절기는 오래전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 현상을 토대로 만들어져 6세기경부터 한반도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차이가 나는 데다 시간도 1600년 정도 흘렀다. 그동안 진행된 기후변화, 특히 20세기 산업혁명 이래의 기후변화도 절기의 느낌을 엄청 바꿔 놓았다. 요즘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처럼 변했다는 얘기는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지난달 28일 오전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서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노지 벼베기 행사가 열려 노랗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달 28일 오전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서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노지 벼베기 행사가 열려 노랗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조상들의 자연관이 우리와 달랐다는 점도 이유다. 농경사회를 살았던 조상들과 현대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 사이에는 기후나 계절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조상들은 날짜는 달을 기준으로 만든 음력을 이용했고, 계절 현상은 태양의 운동을 근거로 만든 절기를 활용했다. 씨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파악하는 데는 절기가 유용했다. 천년도 넘게 24절기에 손때를 묻혀가며 농사용 날씨 경영을 했던 조상들에겐 폭염 절정기에 가을이 자락을 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서울 지역의 기상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입추는 대개 폭염 속에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에 따르면 입추 때 서울 지역 일 평균기온은 26.5℃, 일 최고기온은 30.6℃였다. 기상학적으로는 한여름(일 평균 25℃ 이상, 일 최고 30℃ 이상)에 해당한다. 올해도 7월 30일 장마가 끝나고 입추 즈음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입추 전후 대체로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아침 25℃~한낮 33℃ 안팎의 폭염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입춧날에는 전국에 비가 오면서 기온도 좀 떨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5호 태풍 ‘노루’의 영향이다.

폭염의 날씨를 보인 2일 오후 충남 공주시 반포면의 한 농가에서 농민이 장렬한 태양아래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 김성태기자

폭염의 날씨를 보인 2일 오후 충남 공주시 반포면의 한 농가에서 농민이 장렬한 태양아래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 김성태기자

절기상 우리나라 가을은 ‘입추’에 시작한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추분(秋分, 9월 22~23일)에 시작한다고 본다. 달력 기준으로는 9월부터를 가을로 친다. 기상학적으로는 또 다르다. 일평균 기온이 20℃ 미만으로 내려가 10일간 유지될 경우 그 첫날에 가을이 시작한 것으로 본다. 참고로 최근 30년간 일 평균기온이 20℃ 미만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날짜는 서울 9월 23일, 부산 10월 3일이다. 기상학적으로는 서울이 부산보다 열흘 정도 빨리 가을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그래도 입추는 입추다. 비록 폭염 절정기에 맞긴 하지만 조상들 생각처럼 입추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폭염과 열대야로 힘들고 때때로 태풍 걱정도 해야 하지만 하늘 저편에서는 상쾌하고 선선한 갈바람이 나래를 펴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이때다.

폭염을 피하기 위한 그늘막이 서울 종로 거리에 설치 돼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폭염을 피하기 위한 그늘막이 서울 종로 거리에 설치 돼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남은 폭염 기간에 특히 은퇴기 사람들은 온열질환(열사병·열탈진·열경련·열실신)에 주의해야겠다. 올해 온열질환자 수가 7월까지 900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도 5명으로 나타났다. 온열질환자는 2014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556명, 2015년 1056명, 2016년 2125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발생 최대치를 기록했던 작년 동기(7월말 누계) 대비 올해 환자수가 20%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사망자 58명을 분석한 결과, 70대 이상 고령자가 절반(29명)을 차지했다. 이들은 대개 논·밭이나 비닐하우스 작업 중 사망했다. 전체 질환자는 50대가 21%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40대(17%), 60대(14%)가 이었다. 은퇴기 사람들이 특히 온열질환에 취약하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물을 자주 마시고, 한낮(12시~오후 5시)에는 외출이나 과도한 야외활동, 장시간 논·밭 작업 등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성태원 더스쿠프 객원기자 iexlover@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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