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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m 가는데 5년 4개월, 김인경 첫 메이저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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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매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릴 때면 방송에서는 김인경의 실수 장면이 나왔다. 김인경이 우승 경쟁을 할 때도 어김없이 30cm 퍼트 실수 장면이 나왔다. 선수에게는 엄청나게 큰 상처다.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 18언더파로 우승 #나비스코 우승 30cm 앞서 밀려난 후 #64개월 걸려 끝내 다시 정복 # #

김인경(29)이 7일 새벽(한국시각)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인근 킹스반스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1언더파 71타, 합계 18언더파로 2위 조디 섀도프(잉글랜드)를 2타 차로 제쳤다.
김인경은 2012년 열린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 마지막 홀에서 약 30cm거리의 퍼트를 넣지 못해 결국 우승을 놓쳤다. 골프 역사상 가장 짧은 퍼트 실수, 가장 아쉬운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김인경은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슬럼프에 빠졌다.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올해 6월 숍라이트 클래식과 7월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 3승이자 3개월 연속 우승이다. 메이저 우승을 30cm 앞두고 물러선지 5년4개월 만에 결국 고지에 도달했다.
6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김인경은 파 3인 첫 홀, 티샷을 핀 20cm에 붙여 타수를 더 벌렸다. 미셸 위 등이 경기 중반 줄버디를 잡으면 추격했지만 힘에 겨웠다. 17번홀 김인경은 가파른 개울을 건너는 샷을 그린에 올려 사실상 승부를 갈랐고 18번홀 두번째 샷을 올린 후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 상서로운 분위기는 이미 있었다. 김인경이 3라운드를 마쳤을 때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김인경이 3라운드를 마친 후 뜬 무지개를 배경으로 선 김인경과 매니저.

김인경이 3라운드를 마친 후 뜬 무지개를 배경으로 선 김인경과 매니저.

LPGA 투어 11년차 김인경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얼굴이 까맣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크림을 별로 바르지 않는다. 한 동안은 전혀 바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인경이가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이 켜진 불은 다 끄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자외선차단제가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해서 선크림 사용을 삼갔다. 그러나 요즘은 어머니의 강권에 엷게 바르는 정도다. 화장도 간단하게만 한다.
투박한 건 아니다. 그는 프랑스 식당에서 원어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불어를 배우기도 했다. 시즌이 끝나면 한국에 돌아와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을 한 보따리 산다. 감명 깊게 읽은 책 저자에게는 직접 이메일도 보낸다. 김인경은 “철학이나 문학에 관심이 많다. 작가가 되보고 싶다”고 했다.
김인경은 그림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그는 “고흐를 만나면 ‘훌륭한 작품을 남겨줘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비틀스 매니어이기도 하다. 김인경은 “어떤 잡지에서 비틀스 명곡 100곡을 선정했는데 그중 95곡이 아는 노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스터데이’나 ‘렛잇비’ 같은 대중적인 곡도 좋아하지만 ‘블랙버드’란 곡을 가장 좋아한다.
김인경은 17세이던 2005년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가 싫어 미국으로 홀로 유학을 떠났다. 주니어 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함께 연습을 하던 장타자들에게 뒤지기 싫어 티잉 그라운드 뒤편에서 달려와서 드라이브샷을 하기도 했다. 그의 키는 1m60㎝. 체격이 작아 샷거리도 짧은 편이다. 대신 김인경은 샷이 매우 정교하다. 공을 높은 탄도, 낮은 탄도로 조절하는 건 물론 좌우로 휘어 치는 능력도 뛰어나다.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 후 불교에 귀의했다. 한 동안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지냈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스포츠를 계속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스티브 잡스처럼 인도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만류로 인도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인도네시아 단식원에서 13일을 보냈다. 법륜스님과 함께 수행도 하고, 봉사활동도 한다.
남을 돕는 데도 그는 앞장선다. 2006년 말 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한 뒤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을 때도 그는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지난해 12월 법륜스님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다쳤다. 한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6월 숍라이트 클래식에 출전했다. 그 대회는 발달 장애인을 위한 ‘스페셜 올림픽’을 후원하고 있어서 출전했다. 김인경은 스페셜 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그 대회에서 김인경은 우승했다. 김인경은 시즌 3승으로 다승 선두다. 11년차인 올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킹스반스=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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