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개막한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나흘째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광주영화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나 감독보다는, 지명도는 떨어지더라도 자기의 영화 세계가 확고한 인물들을 주로 초청해왔다. 슬로베니아의 여성감독 마야 바이스('국경의 수호자')와 프랑스의 장 피에르 리모쟁('노보(Novo)')도 그런 경우다.
'국경의 수호자'는 여성 감독이 만든 첫 슬로베니아 영화다. 슬로베니아는 1991년에 생긴 신생 국가.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등으로 나뉘었다.
인구 2백여만명의 이 국가에서 연간 만들어지는 영화는 겨우 대여섯 편. 가뜩이나 보수적인 국가라 여성이 메가폰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바이스는 졸업 후 12년간 다큐멘터리와 TV 드라마 등을 만들며 역량을 쌓아 장편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았다.
'국경의 수호자'는 세 여대생이 주인공. 방학을 맞아 카누 여행을 떠나는데 그 강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나눈다. 영화는 과거엔 한 국가였던 지역이 두 나라로 나뉘면서 서로 반목하는 국가이기주의적 태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세대간 갈등, 성의 개방 등 다채로운 문제를 다룬다.
"감독이 여자일 뿐 아니라 주인공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슬로베니아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에요. 게다가 제 영화에 여성간의 동성애가 나오고 남자의 성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으니 난리가 났죠."
개봉 후 감독을 비난하는 편지 공세가 쏟아졌으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마약과 매춘 등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다뤄온 바이스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행히 정부로부터 검열이나 제재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동성애나 민족주의, 세대문제 등은 특정 지역,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죠. 한국에도 있을 수 있는 문제고 거의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죠. 나는 모든 관객이 내 영화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 않아요. 비록 소수의 관객이라도 내가 제기하는 문제에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 6년이 걸렸지만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아 주요 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반응이 좋아 자신을 얻었다는 그는 다음 작품은 좀 더 짧은 시간에 찍을 수 있겠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슬쩍 보여주는 지갑 속에는 엄마와 닮은꼴로 웃고 있는 두 아들의 모습이 단정히 끼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