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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면회 와도 말 못 꺼내 … 주방에서 쪽잠 자며 서로 망 봐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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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예 공관병’ 문제를 제기한 전역 사병 중 한 명인 A씨는 4일 “지휘관 가족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병사의 존재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했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언론 앞에 선 A씨는 “정확한 사실을 더 알리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며 50여 분간 인터뷰를 했다. 지난달 31일 군인권센터가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들에게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했다”고 폭로한 이후 피해 당사자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박찬주 대장 공관병 첫 인터뷰 #불만 있는 병사 최전방 보내기도 #지휘관 가족이 마음대로 부리는 #병사들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당

박찬주 사령관의 공관병으로 근무했던 A씨가 4일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찬주 사령관의 공관병으로 근무했던 A씨가 4일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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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나.
“너무 많아 정리를 못 하겠다. 장군 부인이 병사들을 하인 부리듯 했던 게 가장 힘들었다. 원래 그런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아니다. 면접 보고 다른 데서 훌륭히 복무할 수 있는 병사들이다. 그런데도 마치 하인 부리듯 하고 마음에 안 들면 인격 모독을 했다.”
폭언을 들었다고 했는데.
“(박 대장의 부인이) 조리병에게 ‘너희 엄마한테 이렇게 배웠느냐’고 소리 지르는 걸 들었다. 선물받은 과일이 썩으면 병사들에게 집어 던지기도 했다. 호출 팔찌를 24시간 착용해야 했는데, 눌러서 바로 뛰어오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굼벵이 새끼도 아니고 다시 제대로 빨리 못 오냐’며 나갔다가 안방으로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팔찌 똑바로 안 차면 영창 보낼 수도 있다’고 협박도 했다. 난이나 화분이 80여 개 있었는데 겨울에 얼면 ‘너도 발가벗겨서 물 뿌린 뒤 밖에다 내놓으면 얼어 죽지 않겠냐. 너도 이렇게 할까’라고 말했다.”
그럴 때 박 사령관도 옆에 있었나.
“그냥 그렇게 하도록 놔뒀다. 조리병이 폭언에 너무 힘들어서 공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을 땐 ‘너희가 고생을 해봐야지 (공관이) 편한 것을 알고 불만이 안 나온다’며 최전방 부대(GOP)로 보냈다.”
공관병으로서 특히 힘들었던 점은 뭔가.
“공관에 갇혀서 쉬질 못했다. 주방에서 잠깐씩 쪽잠을 자면서 서로 망을 봐주는 식이었다. 원래 병사들은 주말에 축구도 할 수 있고, 인터넷 이용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절된 공간이라 감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생한다고 휴가를 준다거나 포상을 주지도 않았고, 외출도 제한됐다. 주말에 부모님이 면회를 와도 처음엔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시중 들어야 할 병사들이 면회나 외출을 가면 엄청 싫어했다. 너무 힘들어 창고에서 줄 같은 것으로 자살을 시도한 공관병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씨는 인터뷰 말미에 “공관병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처럼 고통받은 경우는 물론 좋은 지휘관을 만나 일반인처럼 편하게 지내는 경우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폐쇄된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밖에선) 잘 모르니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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