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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통해 본 복귀의 정치학…DJ부터 文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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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전격적인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정치권에선 “성급했다”는 비판부터 “적절한 시기”란 공감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8ㆍ27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당 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조문규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8ㆍ27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당 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조문규 기자

엄태석 서원대 교수는 “정계 복귀는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골라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라며 “안 전 대표도 정치적 미래가 달린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87년 체제’ 이후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은 대개 한 번쯤은 탈락의 쓴 맛을 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본선에서 낙방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컴백’으로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았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상황이 혼란에 빠질수록, 당내 계파 의원이 많을수록 복귀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같은 선례로 봤을 때 어디쯤 좌표를 찍어볼 수 있을까.

1995년 9월 5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대회에서 김대중 총재가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5년 9월 5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대회에서 김대중 총재가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①DJ 모델=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대선에서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200만표 차이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1995년 7월, 2년 7개월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정계로 복귀했다. 복귀 당시 ‘명분이 없다’는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유인태 전 의원 등도 이를 비판하며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이같은 출혈에도 ‘DJ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란 말로 요약되는 철저한 보스정치와 지역기반 때문이었다.
한정훈 서울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하자 민주당 소속 65명의 의원이 동참하면서 제1야당의 지도자로 올라섰다. ‘호남’과 ‘동교동’이라는 확실한 기반을 보유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하지만 3김 시대 이후 보스정치가 사실상 소멸된 만큼 이같은 방식은 앞으로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②이회창 모델=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대선 패배 후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전격 복귀했다. 조순 총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자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당시 수도권 초재선 그룹이 ‘조순 퇴진, 이회창 복귀’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회창 한나라당 당시 명예총재와 조순 총재. [중앙포토] 

이회창 한나라당 당시 명예총재와 조순 총재. [중앙포토]

한 교수는 “조순 전 총재를 당내에서 워낙 흔들었기 때문에 이 전 총재의 조기 복귀는 정서적 반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DJ 정부가 ‘세풍(국세청 통한 대선자금 마련)’ 등 정치적 사건으로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을 몰아붙인다는 야권의 위기의식도 한 몫 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당을 장악해갔다. 2000년 총선을 앞둔 2·18 공천파동에선 허주(김윤환)와도 갈라섰고 YS와도 갈등했다. 새 인물 영입도 계속해 유승민·나경원·이혜훈 의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이 때 영입됐다. 이를 토대로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전 까지는 여론조사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강력한 대선후보로 있을 수 있었다.

2001년 10월 21일 서울 장평초등학교에서 열린 동대문을 재선거 합동연설회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이회창 총재와 함께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10월 21일 서울 장평초등학교에서 열린 동대문을 재선거 합동연설회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이회창 총재와 함께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③구원투수론=선거 패배의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계파 간 내홍으로 정당이 혼란에 빠질 때 ‘구원투수’ 역할로 등판하면서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경우다. 앞선 모델보다 권력의 크기는 작지만 당 혁신을 앞세워 각종 룰 변경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이인영·박지원 후보(기호순)가 2015년 1월 25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이인영·박지원 후보(기호순)가 2015년 1월 25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은 계파 갈등과 지지율 답보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새정치연합의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대권의 기틀을 본격적으로 다졌다. 이때 온라인으로 당원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문 대통령은 절대적인 ‘힘’을 얻었다. 이때 가입한 10만명 대부분이 ‘친문’을 표방하면서 지난 대선 경선까지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했다.
④외로운 늑대=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2007년 대선 패배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2009년 전주 덕진에서 열리는 재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했다.

4.29 국회의원 재선거 무소속 정동영(전주 덕진), 신건(전주 완산갑) 후보가 26일 전북 전주시 중앙동 객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4.29 국회의원 재선거 무소속 정동영(전주 덕진), 신건(전주 완산갑) 후보가 26일 전북 전주시 중앙동 객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민주당 후보로 공천 받았기 때문에 정 전 대표는 결국 탈당 및 무소속 출마라는 초강수를 뒀다. 선거에는 당선됐지만 1년이 지나서야 민주당에 복당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과 충돌한 정 의원은 계파 의원들도 뿔뿔이 흩어지는 등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한정훈 교수는 ”안 전 대표는 앞서 든 예시처럼 강력한 계파도, 당내 친위세력도, 확실한 지역기반도 없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의 복귀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이끌 간판급 선수들이 마땅치 않은 현 상황에서는 승부를 걸어볼만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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