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전격적인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정치권에선 “성급했다”는 비판부터 “적절한 시기”란 공감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는 “정계 복귀는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골라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라며 “안 전 대표도 정치적 미래가 달린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87년 체제’ 이후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은 대개 한 번쯤은 탈락의 쓴 맛을 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본선에서 낙방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컴백’으로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았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상황이 혼란에 빠질수록, 당내 계파 의원이 많을수록 복귀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같은 선례로 봤을 때 어디쯤 좌표를 찍어볼 수 있을까.
①DJ 모델=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대선에서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200만표 차이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1995년 7월, 2년 7개월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정계로 복귀했다. 복귀 당시 ‘명분이 없다’는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유인태 전 의원 등도 이를 비판하며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이같은 출혈에도 ‘DJ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란 말로 요약되는 철저한 보스정치와 지역기반 때문이었다.
한정훈 서울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하자 민주당 소속 65명의 의원이 동참하면서 제1야당의 지도자로 올라섰다. ‘호남’과 ‘동교동’이라는 확실한 기반을 보유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하지만 3김 시대 이후 보스정치가 사실상 소멸된 만큼 이같은 방식은 앞으로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②이회창 모델=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대선 패배 후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전격 복귀했다. 조순 총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자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당시 수도권 초재선 그룹이 ‘조순 퇴진, 이회창 복귀’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 교수는 “조순 전 총재를 당내에서 워낙 흔들었기 때문에 이 전 총재의 조기 복귀는 정서적 반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DJ 정부가 ‘세풍(국세청 통한 대선자금 마련)’ 등 정치적 사건으로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을 몰아붙인다는 야권의 위기의식도 한 몫 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당을 장악해갔다. 2000년 총선을 앞둔 2·18 공천파동에선 허주(김윤환)와도 갈라섰고 YS와도 갈등했다. 새 인물 영입도 계속해 유승민·나경원·이혜훈 의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이 때 영입됐다. 이를 토대로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전 까지는 여론조사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강력한 대선후보로 있을 수 있었다.
③구원투수론=선거 패배의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계파 간 내홍으로 정당이 혼란에 빠질 때 ‘구원투수’ 역할로 등판하면서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경우다. 앞선 모델보다 권력의 크기는 작지만 당 혁신을 앞세워 각종 룰 변경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계파 갈등과 지지율 답보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새정치연합의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대권의 기틀을 본격적으로 다졌다. 이때 온라인으로 당원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문 대통령은 절대적인 ‘힘’을 얻었다. 이때 가입한 10만명 대부분이 ‘친문’을 표방하면서 지난 대선 경선까지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했다.
④외로운 늑대=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2007년 대선 패배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2009년 전주 덕진에서 열리는 재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민주당 후보로 공천 받았기 때문에 정 전 대표는 결국 탈당 및 무소속 출마라는 초강수를 뒀다. 선거에는 당선됐지만 1년이 지나서야 민주당에 복당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과 충돌한 정 의원은 계파 의원들도 뿔뿔이 흩어지는 등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한정훈 교수는 ”안 전 대표는 앞서 든 예시처럼 강력한 계파도, 당내 친위세력도, 확실한 지역기반도 없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의 복귀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이끌 간판급 선수들이 마땅치 않은 현 상황에서는 승부를 걸어볼만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