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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장막 뒤에 숨은 경총 … 자기반성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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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고용노동부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확정해 4일 고시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자율투표로 결정한 시급 7530원이다. 이에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이의 신청을 했다. “금액이 너무 높다”는 요지다. 고용부는 “이해할 수 없는 이의 제기”라며 일축했다.

고용부가 경총의 이의 제기를 왜 무시했을까. 그 답은 경총이 갖고 있다. 경총은 최저임금위에서 사용자 위원 간사를 맡고 있다. 사용자 측은 최종안으로 시급 7300원을 제시했다. 올해보다 무려 12.8%, 1000원 가까이 올린 액수다. 역대 최고 인상안이다. 최종 결정액과는 230원 차이다. 이러니 고용부가 “당사자의 불만치고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다. 경총의 이의 제기에 “회원사 불만을 의식한 대외 선전용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경총이 지금 할 일은 면피성 짙은 과잉 제스처 대신에 사용자단체로서 역대 최대 임금인상안을 내놓은 배경과 근거부터 대는 거다. 그것이, 막대한 회비를 내는 회원사와 중소기업을 비롯해 어려움에 부닥친 경영계에 대한 예의다. H그룹 인사담당자는 “어떤 셈법인데 7300원이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 액수를 어떻게 업계가 감내할 수 있다고 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저임금 결정 후 경총의 행보는 고작 한 장짜리 성명을 낸 게 전부다. “향후 발생할 모든 문제는 무책임한 결정을 내린 공익위원들과 이기적 투쟁만 벌인 노동계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용자단체로서, 최저임금 결정의 동반 주체로서 책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니 경총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전방이 경총을 탈퇴하겠다는 것 아닌가. 전방이 어떤 기업인가. 경총 가입 1호 기업이면서 초대 회장을 지낸 회원사다. 그 상징성이 남다르다. 그런데도 경총은 묵묵부답이다. 오죽하면 조규옥 전방 회장이 “경총은 너무 무능하다”고 했을까.

경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정부의 친노동정책을 비판했다가 ‘반성문’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 더 뼈아픈 반성문을 경영계에 내놔야 한다. 어떤 근거로 역대 최고 인상안을 냈는지 고백하고, 업계 피해를 최소화할 중지를 모으는 것이 올바른 도리다. 경총의 ‘직무유기’가 계속되면 노동이슈에 대한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노동정책에 대한 경영계의 브레이크 기능이 사라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