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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극우 거부 ‘극중주의’ 내세워 조기 등판한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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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오종택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오종택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5·9 대선에서 패배한 지 86일 만에 정계 일선 복귀를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당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며 오는 8·27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당권 도전은 당내 반발을 무릅쓴 선택이다. 스스로도 “제가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지난 7월 초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한 말도 뒤집은 셈이 됐다. 안 전 대표는 왜 조기에 정계에 복귀해 전당대회에 나서려는 것일까.

대선 패배 86일 만에 대표 출마선언 #안 “좌우 이념에 경도되어선 안돼” #정동영·천정배 의원 등에 견제구 #당내 입지 약해지자 위기감 느껴 #지방선거서 다당구도 유지 명분도

① 정동영·천정배와 정체성 차이=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극중주의(極中主義·Radical centrism)’라는 용어를 꺼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정동영·천정배 의원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서였다. 안 전 대표는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에 매진하는 것이 바로 극중주의”라며 “극중주의에 대해 분명하게 알리는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과 천 의원은 모두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정 의원은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주장하는 ‘중도 정당’과는 거리가 있다.

국민의당은 그동안 호남 눈치를 보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정· 천 의원 모두 “민주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에서는 “정 의원 등이 대표가 되면 민주당과 더 밀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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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방선거에서 다당제 유지=안 전 대표는 그동안 다당구도의 성립을 국민의당의 정치적 성과이자 자신이 정치를 하는 명분으로 꼽아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바른정당과 연대를 주장하는 비호남권 의원이나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안 전 대표 출마를 지지하는 양상이다. 안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원외지역위원장은 “바른정당과의 정책 연대로 시작해 선거 때 선거연대로 확대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그림”이라며 “안 전 대표가 당 대표가 되면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론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도 회견에서 “같이 하는 정치세력을 두텁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안 전 대표는 “바른정당을 염두해 둔 것이냐”는 질문에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라며 “전당대회 과정에서 우리 당의 방향을 확립하고, 그 방향과 정책에 따라 다른 정당을 설득해나가는 게 순서”라고 답했다.

③ 불안한 당내 입지=안 전 대표가 재등판을 선택한 현실적 이유 중 하나는 당내의 불안한 입지다. 국민의당은 안 전 대표가 간판 역할을 해왔지만, 실질적으로는 호남 중진들이 당을 주도하는 이원화된 구조였다. 지난 1월 안 전 대표가 측근인 김성식 의원을 원내대표로 밀었다가 호남 의원들의 지지를 구하지 못해 실패한 게 이런 구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현재는 안 전 대표의 당내 기반이 더 취약해진 상황이다. 대선 패배 이후 안 전 대표의 리더십을 거론하는 의원들도 많은 상황이다. 당과 거리를 둔 채 장기간 칩거를 하다가는 돌아올 역할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정 의원 등이 당 대표가 되면 당에서 자신의 색깔이 완전히 지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④ 단기 당 대표 트라우마=안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에서 두 번 당 대표를 지냈다. 두 차례 모두 전당대회가 아닌 창당 과정에서 추대 형식으로 대표가 됐다. 대표를 지난 기간이 모두 4개월 정도다. 새정치연합 때는 2014년 7·30 재·보궐 선거 패배로, 국민의당 때는 총선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으로 물러났다.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송기석 의원은 “당 대표직을 일찍 내려놓으면서 당의 혁신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른정당과의 연합 혹은 안 전 대표의 극중주의 행보는 호남 지역에서 반발을 살 수도 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출마해 바른정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 호남표가 흔들리고, 반대를 택할 경우 비호남 표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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