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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독한 해충들, 한국 상륙이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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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공항 입국장에서 나온 어머니는 울상이었다. 휴대한 과일을 몽땅 압수당했다고 한다. 해외여행 시 열대과일 반입 금지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어머니는 흘려들으신 모양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들으니 공항에서 폐기하는 과일의 양이 매년 몇 트럭씩 된다고 한다. 과일을 금하는 이유는 과수 해충으로 악명 높은 과실파리가 숨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외국 현지 과일에 곤충 알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

외래종 곤충들이 우리 땅 차지 #생태계 탄탄하면 문제 없지만 #이미 국가적 해충 대응에 한계 #시민도 나서 지킴이 역할 해야

곤충은 크기가 작지만 번식력이 좋아 적당한 조건이 갖춰지면 급속히 수를 늘린다. 특히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는 대다수 곤충에게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올해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 중에 유독 곤충 문의가 많다. “처음 보는 신종 같다”면서 동영상이나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국내에 유입되어 꽤 번지는 외래종 ‘갈색날개매미충’이었기에 더욱 낯설어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 사는 곤충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과연 이 곤충은 원래부터 여기에 살던 토종이 맞을까. 곤충은 도시화·기후변화·지구온난화 등 환경 문제를 가늠하기 좋은 지표생물이다. 식물과 달리 쉽게 이동하고 빨리 번지는 특성 때문이다. 또한 변온동물로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 매년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곤충을 열거해 보자. 매미·하루살이·깔따구·갈색여치·대벌레·풀무치·말벌···. 모두 왜 이 곤충들이 이렇게 많아졌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전국을 누빈 곤충학자들의 말은 한결같다. “요즘 참 곤충이 없네-.” 예전에 보았던 친숙한 곤충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곤충학자는 강원도 깊숙한 산골짜기에서 외래종 꽃매미를 만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 주변 곤충의 종류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외래종은 주지하는 대로 고유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환경 변화를 급격히 겪은 지역에서 해충들은 자기 세력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 동남아 열대우림의 깊숙한 곳을 탐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지독한 녹색의 밀림 한가운데 외래종 한 무리가 떨어지게 되면 과연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우리 자연 생태계가 탄탄한 복원력을 갖고 있다면 외래종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척박한 곳에는 어김없이 외래종이 위세를 떨친다.

일본에 남미산 맹독성 불개미가 상륙해 연일 주요 뉴스가 되고 있다. 사람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독한 녀석이다. 물자 왕래, 해외여행이 빈번해지면서 특정 지역에서 문제되던 해충이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2011년 외래종 생태계 위해성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세계적 악성 외래생물 목록을 정비했다. 여기에는 모기·말벌·개미 같은 요주의 곤충이 포함돼 있는데, 일본의 사례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독한 해충의 정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주변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이웃 나라에서 징조가 나타나면 수년 내 국내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래 곤충이 들어오는 방법은 다양하다. 멸강나방이나 벼멸구처럼 주변국에서 바람 타고 하늘을 직접 건너오는 경우가 있지만,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비행기·배 등 수송수단과 수송물자에 무임승차해 수만㎞ 떨어진 낯선 땅에 처음 발 디디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항구에 보관 중인 적재화물이나 항만도시 생태계 감시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애완 곤충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외래 곤충 수입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이국적인 생물을 곁에 두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둠의 경로로 국내에 들어와 퍼지는 경우 질병을 매개하거나 농작물·과수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단순하지만 경각심을 높이고 우리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로 앞으로 또 어떤 곤충들이 뉴스에 등장할까. 낯선 아열대성 곤충들과 살아갈 준비가 됐는지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 노력만으로 해충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낯선 외래 곤충을 보았다면 가까운 국가기관에 신고하자. 국립생물자원관의 전문가들은 정확한 종 판별을 통해 자생종인지 외래종인지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다행히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에서 지역 생태계 모니터링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각종 인터넷 카페 등에는 곤충 사진을 찍어 이름을 물어보는 활동이 활발하다. 어떤 방식이든 우리 환경을 지키는 데는 작은 관심이 중요하다.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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