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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대학가 ‘830원’ 공방...힘받은 비정규직vs눈치보는 대학 최저시급 밀당

중앙일보

입력

방학을 맞은 대학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로 뜨겁다.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인상 등 친노동 정책이 현실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시급 인상 요구도 강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 #동시다발적 시급 인상 요구 #대학들 ‘난감’…여론 주시 #일부 대학 정규직화 결정도

대학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학이 직접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급을 올려달라”며 동시다발적인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25일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 안에서 시급 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 안에서 시급 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소속 청소ㆍ경비ㆍ주차 노동자 200여 명은 연세대 총무팀 사무실이 있는 백양관 1층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시급을 6950원에서 7780원으로 830원 인상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 측은 “대학이 본관까지 문을 잠그고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른 대학에서도 원청업체 격인 학교가 나섰기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될 수 있었다. 연세대도 학교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학가의 시급 인상 요구 집회는 올해 들어 확산일로다. 지난 1월부터 연세대 등 17개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급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당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해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지만, 최종적으로 830원 인상안을 제시했다. 홍익대ㆍ고려대ㆍ 숙명여대 등 10여 개 대학에서도 협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이 상반돼 대립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등으로 지급 여력이 없는 데다, 학교는 노동자들과 교섭을 해야 하는 주체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임금 협상은 노동자들을 고용한 용역 업체와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대학 구성원들의 시선도 엇갈린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일부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홍익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집회 중인 노동자들에게 물품 지원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자들의 요구에 무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정한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7530원·2017년 6470원보다 16.4%인상)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면서 고용 관계에 있지 않은 대학을 압박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연세대 학생 김모(25)씨는 “심정적으로는 청소 아주머니들 편이지만 무조건 학교가 해결하라는 식의 접근이 맞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난감한 대학들은 여론을 주시하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솔직히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대학이 책임져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리한 측면이 있는데도 혹시나 잘못 비춰져 대학의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다. 여론이 가장 부담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급 인상을 요구하며 이화여대 본관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 . 송우영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급 인상을 요구하며 이화여대 본관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 . 송우영 기자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이후 노동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했던 이화여대는 지난 19일 시급을 올려주기로 했다. 노조는 본관 점거 총파업을 했고, 총학생회는 노동자들을 강하게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화여대 최초의 직선제 총장이자 ‘촛불 총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혜숙 신임 총장이 여러 사정을 감안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여대는 시급 인상액 830원 중 일부를 대학이 용역 업체에 보전해 주는 방식을 택했다.

‘830원 인상안’은 지난 6월 말 카이스트에서 합의된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ㆍ동덕여대ㆍ덕성여대ㆍ광운대 등이 동일 금액 인상에 합의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일 이화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이화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대학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경희대는 지난 26일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노동자 135명을 정년 70세까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2년 전부터 학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논의해 온 성과”라고 설명했다. 대학의 부담이 커지더라도 구성원인 노동자들을 배려하는 ‘상생 실험’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같은 정규직화가 대학의 부담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1일 “정규직화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파견이나 용역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용역업체의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가치세 등이 절약된다. 실제로 국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보니 비용이 많이 절약돼 예산은 그대로 두고 임금을 5% 올려드렸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소재 38개 대학 가운데 청소 노동자를 대학이 직접 고용한 곳은 서울시립대ㆍ가톨릭대ㆍ삼육대ㆍ서경대ㆍ서울기독대 등 5곳이다.

송우영ㆍ최규진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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