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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잊지 못할 택시운전사 7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영화 골라 드립니다


영화 속에서 밤낮 거리를 달리는 택시는 시대의 목격자이거나, 고단한 서민의 삶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스피드광’을 자처하는 총알택시 운전사는 어느 날 갱 잡는 영웅이 된다.

‘택시 드라이버’(1976, 마틴 스코시즈 감독)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허무감에 시달리던 택시운전사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는 자신이 타락한 도시의 구원자란 생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마틴 스코시즈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 1970년대 암울했던 미국 사회를 너무 강렬하게 반영했던 걸까. 1981년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 존 힝클리는 이 영화를 열다섯 번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주장해 마틴 스코시즈 감독을 곤경에 빠트렸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 사회에 짙게 드리운 후유증을 그린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

베트남전 이후 미국 사회에 짙게 드리운 후유증을 그린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

‘택시’(1998, 제라르 삐레 감독)
손님들 오금 저리게 만드는 총알택시를 아예 액션 소재로 내세운 오락영화다. 프랑스의 총알택시 운전사 다니엘(사미 나세리)은 운 나쁘게도 경찰 손님을 태우고 초고속 스피드를 자랑한 탓에, 졸지에 독일 갱단 체포를 거들게 된다. 갱단의 최신형 벤츠와 영업용 푸조의 폭주 대결이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스릴 넘친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득. ‘레옹’(1994)의 뤽 베송 감독 제작으로, 4편까지 나왔다.

뤽 베송 감독이 제작한 '택시' 시리즈는 역대 택시 소재 영화 중 가장 짜릿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뤽 베송 감독이 제작한 '택시' 시리즈는 역대 택시 소재 영화 중 가장 짜릿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콜래트럴’(2004, 마이클 만 감독)
하룻밤 동안 택시를 전세 낸 ‘후한’ 손님(톰 크루즈)이 마약밀매조직에 고용된 살인청부업자일 줄이야. 평범한 미국 LA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는 이 살벌한 손님을 벗어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사태는 악화 일로를 걷는다. 로버트 드 니로가 캐스팅될 뻔한 맥스 역을 꿰찬 제이미 폭스는 그해 골든글로브●아카데미시상식 모두 남우조연상 후보에 호명됐다.

'콜래트럴'에서 제이미 폭스(사진 오른쪽)가 연기한 택시운전사 역에는 로버트 드 니로가 캐스팅될 뻔했다.

'콜래트럴'에서 제이미 폭스(사진 오른쪽)가 연기한 택시운전사 역에는 로버트 드 니로가 캐스팅될 뻔했다.

‘화려한 휴가’(2007, 김지훈 감독)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십 대의 광주 버스와 택시들이 군부독재의 총칼을 막아낸 광경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어쩌면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이전에 5.18을 다룬 이 영화 주인공의 직업 역시 택시운전사가 된 배경 아닐까. 김상경이 연기한 민우는 1980년 실존했던 28세 광주 택시운전사 김복만이 모티브. 김복만은 시위 참가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택시운전사 민우(사진 왼쪽)는 좋아하는 사람(이요원)과 결혼해 하나뿐인 동생(이준기)을 보살피며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1980년 5월, 그날의 비극이 아니었다면.

광주 택시운전사 민우(사진 왼쪽)는 좋아하는 사람(이요원)과 결혼해 하나뿐인 동생(이준기)을 보살피며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1980년 5월, 그날의 비극이 아니었다면.

‘악마를 보았다’(2010, 김지운 감독)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에게 응징당한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이 한밤중 외딴 국도에서 택시를 잡는데, 택시기사와 먼저 탄 손님이 알고 보니 2인조 택시 강도다. 연쇄살인마와 택시 강도의 만남, 결말은? 처참하다고만 말해둔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택시운전사를 가장한 택시 강도(사진 왼쪽). 어렵게태운 손님이 하필 연쇄살인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택시운전사를 가장한 택시 강도(사진 왼쪽). 어렵게태운 손님이 하필 연쇄살인마다.

‘택시’(2015, 자파르 파나히 감독)
이 영화의 택시운전사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 자신이다. 이란 정부로부터 20년간 영화 연출을 금지당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란의 혹독한 현실을 영화에 담아 세계에 알려왔다. 이후 택시에서 오가는 승객들의 진솔한 대화를 휴대폰에 담게 된 그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지인을 동원해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 영화의 택시는, 때론 뭉클하고, 때론 아프고 시린 이란 사람들의 삶을 담는 캔버스와 같다. 2015년 비밀리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전달된 이 영화는 그해 황금곰상에 호명됐다.

이란의 현실을 영화에 그려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테헤란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몸소 택시운전사로 나섰다.

이란의 현실을 영화에 그려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테헤란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몸소 택시운전사로 나섰다.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장훈 감독)
가족을 건사하기 바빴던 소시민이 외면해온 시대에 눈뜨는 뼈아픈 서사. 이를 송강호만큼 공감하게 만드는 배우가 있을까. 1980년 5월, 밀린 월세를 탕감할 두둑한 택시비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모른 채 독일 기자(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민주화를 외쳤다는 이유로 피 흘리는 광주의 평범한 시민들을 목도한 그는 혼자만 살아남으려던 마음이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송강호의 말처럼, 5.18을 외부자들의 시선으로 본 이 영화에 가득한 건 그날 광주시민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다.

평범한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사진 왼쪽)은 독일 기자 피터(오른쪽)로 인해 광주의 진실을 목도한다.

평범한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사진 왼쪽)은 독일 기자 피터(오른쪽)로 인해 광주의 진실을 목도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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