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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주말마다 산골 알몸 파티…누드펜션 운영에 화난 주민들 “물러가라”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북 제천시 봉양읍 묘재마을 주민 박운서씨가 27일 오후 누드동호회 회원들이 휴양시설로 쓰는 펜션을 가르키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제천시 봉양읍 묘재마을 주민 박운서씨가 27일 오후 누드동호회 회원들이 휴양시설로 쓰는 펜션을 가르키고 있다. 최종권 기자

27일 오후 1시 충북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묘재마을. 마을 뒷산을 오르는 입구에 ‘농촌 정서 외면하는 누드 펜션 물러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손에 묵주(默珠)를 쥔 천주교 신자 김영옥(77·여)씨는 “누드 펜션인지 뭔지 마을에 들어와서 얼마나 망측한지 몰러”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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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가리킨 곳에는 2층짜리 펜션 건물의 지붕이 보였다. 펜션은 묘재마을 주민들이 사는 주 거주지와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가장 가까운 집은 불과 50m 거리다 . 김씨는 “주말마다 외지에서 온 남녀들이 마당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난 뒤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묘재마을 앞에 '누드펜션' 운영 금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제천시 봉양읍 묘재마을 앞에 '누드펜션' 운영 금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한적한 산골 마을에 들어선 누드 동호회 전용 휴양시설이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놨다. 2008년 묘재마을 뒷산에 문을 연 이른바 ‘누드 펜션’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한 누드 동호회 회원들이 이용하는 장소로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한다.

주말마다 나체주의 회원들 몰려와 벌거 벗고 파티·물놀이 등 즐겨 #동호회 “외부활동 자제해 피해 안준다”, 주민들 “정서에 맞지않아” #주민들 "퇴폐마을로 낙인 부끄럽다"… 청와대·국회 탄원서 내기로

2010년 주민들의 항의로 한동안 운영을 중단했던 누드 펜션은 올 초부터 재개했다. 149㎡ 규모인 펜션은 2층에 마을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 뒷마당에는 취사·물놀이 시설이 설치돼 있다. 펜션 주위에는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 2개도 조성됐다.

펜션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항의성 글이 쓰여 있었다. ‘누드족 진입금지’, ‘누드족 물러가라’ ‘너희 집에 가서 마음껏 벗어라’는 등 주민들이 스프레이로 써놓은 글귀가 바닥에 보였다.

묘재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을 오르는 길에 항의 글을 써놨다. 최종권 기자

묘재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을 오르는 길에 항의 글을 써놨다. 최종권 기자

묘재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을 오르는 길에 항의 글을 써놨다. 최종권 기자

묘재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을 오르는 길에 항의 글을 써놨다. 최종권 기자

묘재마을에는 12가구 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60~80대 노인들로 천주교 신자가 60%다. 이 마을에서 8㎞ 떨어진 곳에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든 배론성지(충청북도기념물 제118호)가 있다. 묘재마을엔 조선말 천주교 순교자인 남종삼(1817~1866)의 생가도 있다.

마을 주민 박운서(83)씨는 “올 초부터 펜션 주변에서 벌거벗은 성인 남녀가 거리낌없이 활보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돼 주의를 줬지만 소용이 없다”며 “옷을 벗은 채 배드민턴을 치고 고기를 구워먹거나 간이 수영시설에서 물놀이를 하는 바람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박씨는 “건물 안에 있으면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밖에서 활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며 “펜션 양쪽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어 나물을 뜯으러 가는 주민들이 누드족들의 야외 활동을 볼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동호회는 나체주의는 개인 취향이고 사유지에서 지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날 펜션에서 만난 동호회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의 항의가 있어 동호회 내부에서 룰을 정해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며 “마을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반면 주민들은 펜션 때문에 동네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한다. 이해선(65)씨는 “누드 펜션이 운영되면서 마을로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며 “뒷산에 아버지 산소가 있지만 펜션을 보지 않기위해 먼길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임정자(65·여)씨는 “마을에 이사 온지 두 달밖에 안됐는데 퇴폐 시설이 있는 마을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며 “손주들이 나체로 활동하는 성인 남녀들의 모습을 보지 않을까 걱정돼 오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충북 제천 묘재마을 뒷 산에 있는 이 펜션에서 주말마다 누드 동호회 회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최종권 기자

묘재마을 주민들은 28일 동호회 회원들이 펜션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시위를 할 예정이다.

박운서씨는 “주민들이 나이가 많아 걱정은 되지만 이번에는 꼭 누드 펜션을 마을에서 몰아내겠다”며 “청와대와 국회에 펜션 운영을 중지하는 탄원서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경찰과 지자체에 단속도 요구하고 있지만 펜션 운영을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해당 건물이 사유지이고 별다른 불법 행위도 발견되지 않아 경찰이나 지자체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펜션에서 성인 남녀들이 옷을 벗고 놀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출동했지만 모두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제천경찰서는 이 펜션에 '공연음란죄'를 적용하는 방법을 논의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연음란죄를 적용하려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는것을 인지해야 하는데 이 펜션은 주민들이 일부러 산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볼수 없다”며 “성매매나 음란행위가 발견되지 않았고 일부 회원들은 아이들도 데리고 오는 등 서로 동의하에 옷만 벗고 있는 것이라 딱히 적용할 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봉양읍사무소 관계자는 “마을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아 걱정이지만 행정적으로 제제할 방법이 없다”며 “동호회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제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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