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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써티(Thirty)테크] ⑯ 미친 집값의 시대…전세 끼고 잠실 아파트 매매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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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미친 집값의 시대…전세 끼고 잠실 아파트 매매 도전기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사모님. 지난주에 보신 11□동은 팔렸어요. 가격 조정 없이 13억8000에요. 13억5000에 내놨던 15◇동은 가격을 13억8000으로 올렸고요. 13억5000짜리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요. 이게 새로 나온 물건 리스트, 이건 가격 올린 물건들이에요.”

두달만에 2억 넘게 오른 잠실 집값 #일주일만에 또 3000만원 껑충 뛰어 #"집 안 보고 사는 건 뉴스도 아니다" #계약서 쓰는 날 안 나타나는 매도자도

지난 15일, 이곳은 서울 잠실동의 한 부동산.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부동산 실장님의 브리핑이 이어진다. 마치 전투 상황을 설명하는 지휘관 같은 분위기다.

그렇다. 이건 흡사 전쟁을 연상케 한다.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 사이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치열한 전투.

아니다. 전투라고 하기엔 무게 중심이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 이건 흡사 깃발 뽑기 달리기 경주와 같다. 깃발(=매물)이 보이면 매수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서로 차지하려 아우성이다. 가까운 곳의 깃발(=상대적으로 저렴한 매물)은 이미 다 뽑혔고, 멀리 있는 것만 남았다. 그나마 끊임없이 위치가 달라진다(=점점 비싸진다).

4월과 비교해 33평이 2억~3억원 오른 잠실 아파트 단지. 그야말로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4월과 비교해 33평이 2억~3억원 오른 잠실 아파트 단지. 그야말로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내가 잠실동 부동산에서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게 된 사연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단 13억원 대라니, 그런 큰돈이 내게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에 한참 못 미치는(정확한 액수는 비밀) 목돈이 덜컥 생겼다. 2010년 샀던 집을 지난달 팔았기 때문이다. 친정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당장 집이 필요 없단 이유로 팔았다.

그런데 이달 초, 잔금이 들어오니 고민이 시작됐다. 이걸로 뭘 하지. 주식은 너무 올라서 무섭고 예금은 금리가 쥐꼬리만 하고. 집을 다시 살까? 애 키우며 오래 살만한 집. 대출을 받으면, 또는 전세를 끼고 사면 살 수 있지 않을까?

3~4년 뒤 입주를 노리는 실수요형 갭투자. 이게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다. 집값이 당분간은 우상향하거나 최소한 크게 떨어지지 않을 거란 전망에 근거했다. 여기에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단지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한강 조망 및 종합운동장 개발 호재에 관심 많은 남편의 수요가 합쳐져 목표지역을 잠실로 정했다.

그리고 최근 인기를 끈다는 ‘돈 되는 아파트, 돈 안 되는 아파트’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알려준 대로 부동산에 전화했다. “네이버에 올라온 잠실 A단지 14○동 ◇층, 팔렸나요?”

역시나 상대적으로 저렴해보였던 그 집은 팔렸다. 더 좋은 매물이 있다며, 당장 집 볼 약속을 잡아주겠다며 부동산 실장님이 적극적이다. 그래, 가보자. 이렇게 지난 8일 잠실 A단지에 처음으로 집을 보러 갔다.

어, 그런데 가격이 영 이상하다. 이른바 ‘로열층, 로열라인’이라 주장하는 매물은 13억8000만원이 기본이다. 방 세 개짜리 33평인데 말이다. 4월만 해도 11억원대였던 시세가 5월 들어 무섭게 오르더니 급기야 최근 14억원을 찍었다고 했다. 아무리 전세를 낀다고 해도 13억원이 넘는 집을 산다는 건 우리 부부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실장님은 유독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지 않는 15◇동이 조망이 좋다며 강추했다. 13억5000만원이라는 가격도 지금 기준으로는 싼 거라고 했다. “사모님, 이전 가격은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집 안 보고 사는 건 요즘 뉴스도 아니에요.”

잠시 혹했다. 이틀을 고민한 끝에 나는 “어떻게 평생 살 집을 보지도 않고 사느냐. 그럴 순 없다”는 답을 줬다. “지금 안 잡으면 다른 데서 가로채 갈까봐 조바심이 난다”는 부동산 실장님의 말투에서 정말 초조함이 묻어났다. 사실 난 이런 생각도 했다. 아니, 로얄동도 아닌데 13억5000만원이라니. 게다가 집도 안 보고 사면 완전 ‘호갱’ 되는 거 아니야?

부동산이 강추했던 15*동은 일주일만에 가격을 3000만원 올렸다. 그리고 결국 집주인이 안 팔겠다며 매물을 거둬들였다. 더 오를 거라고 본 것이다.

부동산이 강추했던 15*동은 일주일만에 가격을 3000만원 올렸다. 그리고 결국 집주인이 안 팔겠다며 매물을 거둬들였다. 더 오를 거라고 본 것이다.

일주일 뒤 다시 찾은 A단지. 이날은 결심을 단단히 하고 나왔다. 반드시 집을 사고야 말겠다며, 가계약금 입금을 위한 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OTP)까지 챙겨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부동산 4곳과 10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빽빽하게 집 보러갈 약속을 잡아뒀다.

그런데 첫 번째 부동산에 가자마자 패닉이다. 실장님의 지난 주 강추 매물이었던 15◇동이 일주일만에 3000만원을 올렸다. 살까 말까, 잠시나마 고민했던 게 허무하다. 13억5000만원이면 싼 거라는, 실장님의 시장 분석이 정확했던 셈이다.

“그래도 지금 기준으로는 거기가 여전히 가장 추천할만 해요. 좀 지나면 14억 부른다니까요.”
새로 나온 매물 역시 저층을 제외하곤 대부분 13억8000만원이 붙어있고, 14억짜리도 여럿이다.
“요즘엔 매도자가 계좌번호 주면 감사할 정도에요.”
실장님의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부동산. A단지 바로 옆의 B단지를 보러 갔다. A단지보다 집값이 덜 오르지 않았을까 싶어 찾았는데 웬걸. 여기도 남향(정확히는 남동 또는 남서향)에 중층이면 13억5000만원이 기본, 웬만한 물건은 이제 13억8000만원을 부르고 이미 14억짜리도 있었다. “사모님. 이제 더 이상 싸고 좋은 물건은 없어요. 이젠 제 값 주고 좋은 물건을 사야 해요.” 이 곳 실장님은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잘라 말했다. “B단지도 이미 14억 찍은 거 아시죠? 지난 주에만 13억5000짜리가 10개 넘게 팔렸어요.”

세 번째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되레 내게 하소연한다. “요즘은 부동산도 힘들어요. 매수자가 사겠다고 입질하면 곧바로 가격을 올려버리니까요. 중간에서 저희가 난처해진다니까요.” 이 부동산의 강추 매물은 작은 방과 부엌에서 한강 조망이 되는 B단지 20□동. 13억3000만원인데 한두 달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13억5000만원을 불러도 나갈만한 매물”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세입자 사정 상 이날은 안 되고 월요일 오전에나 볼 수 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전, 가장 빠른 시간에 집을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외울 지경이 된 잠실 아파트의 동 배치도. 이제 대략 몇동 몇호, 하면 어딘지 그려진다.

외울 지경이 된 잠실 아파트의 동 배치도. 이제 대략 몇동 몇호, 하면 어딘지 그려진다.

아침부터 집을 보러 돌아다니니, 체력이 바닥날 지경이다. 마지막 네 번째 부동산에 갈까, 아니면 취소할까. 고민하다가 연령대가 높을 것으로 추측되던 공인중개사의 목소리가 떠올라서 A단지 상가 내 부동산을 찾았다. 예상대로 일흔은 넘었을 듯한 외모의 할머니 공인중개사셨다. 전날 내놨다는 12○동 집을 함께 보러갔다.

2주에 걸쳐 14번째로 본 집 중 가장 비싼 가격(14억원)의 집이었다. 가격에 비해 다른 조건은 평범했다. 아무리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지만, 큰 매력이 없어 보이는 매물이었다. 별 감흥 없이 집을 보고 나왔는데 공인중개사 할머니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상해. 이게 왜 이런 가격에 나와. 그런데 이 가격에 나간대. 도대체 시장이 왜 이런 거야. 돈이 갈 데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이렇게 오르면 언젠가는 떨어지기 마련이거든.”

할머니의 말에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맞아, 이건 이상해. 어떻게든 값이 더 뛰기 전에 집을 사야만 한다는, 일단 깃발 뽑기 경주에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뛰던 우리 부부를 훅하고 내려치는 말이었다.

그럼 그 말 한마디에 깨끗이 포기했냐고?
그럴 리가. 불은 이미 활활 타올랐다. 거기에 찬물 한컵 부었다고 해서 불이 꺼지진 않는 법이다.

이틀 뒤 월요일 아침. 출근 전 이른 시간에 우리 부부는 잠실동 부동산을 찾았다. B단지 20□동 물건을 매수자 중 가장 먼저 보기 위해서다. 그래도 아직 이 시장에 질서가 남아있다면,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팔려 나가는 시기엔 10분이라도 먼저 보는 사람이 유리한 셈이다.

너무 일찍 가서 약속된 시간이 남았다. 시간이 되길 부동산 실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지난 토요일 잠실부동산 단체카톡방에서 화제가 된 일을 전해줬다. 주 초에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토요일에 만나서 계약서를 쓰기로 했는데, 매도자가 그 자리에 안 나타났다고 한다. 집값을 더 올려 받겠다는 통보다.

“그럼 매도자가 받은 가계약금을 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 질문에 실장님은 “그게 그렇지가 않다”며 설명했다. “이런 경우에 거의 100% 가격을 올려서 계약을 진행하죠. 매도자가 원하는 인상폭에서 조금이라도 깎아서 계약할 수 있으면 성공이고요.”

매수자로서는 가계약한 집을 놓치면 다른 집을 다시 구해야 하는데 이미 집값이 무섭게 뛰고 있으니, 차라리 원래 사려던 집을 가격을 올려주더라도 잡는 게 이익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가계약이지만 약속은 약속인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깰 수 있다니 놀라웠다. 무엇보다 그 똑같은 일을 내가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두려웠다.

둘러본 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확장 되지 않은 부엌을 공사하려면 돈이 드니 500만원이라도 깎을 수 없겠느냐”며 운을 띄워봤지만 매도자 쪽 부동산은 한푼도 못 깎는다고 했다. 그래, 아쉽지만 13억3000만원에 계약하자. 집을 보고 나오면서 곧바로 결정했다. 공인중개사가 매도자 쪽에 연락해서, 가계약금을 입금할 계좌번호를 받기로 했다.

집을 사겠다고 결정하다니. 이렇게 비싼 집을. 취득세와 복비까지 합치면 5000만원이 넘게 추가로 드는데. 내가 해놓고도 믿기지 않는 결정이었다. 앞으로 대출을 받아 그 원리금을 30년 만기로 갚아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동시에 폭등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내집 마련을 위해 더 이상은 발을 동동 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안도감도 느꼈다. “잘한 건가? 잘한 거겠지?”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낮 12시에 준다는 계좌번호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매도자쪽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오후 3시가 넘어 공인중개사가 전화를 통해 “계좌번호를 주긴 줄텐데, 가격을 2000만원 정도 올려달라고 할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알려온다. 결국 오후 6시 45분. 집주인의 계좌번호와 함께 최종 통보가 왔다. “1500만원 올려서 13억4500만원에 계약하기로 하고 가계약금 입금해달라. 이 가격에 안 한다고 하면, 두 번째로 집을 본 매수자에게 넘기겠다.”

매도자의 계좌번호 받기가 어렵다는 말, 실감했다.

매도자의 계좌번호 받기가 어렵다는 말, 실감했다.

1500만원. 우리 부부가 몇 달을 아등바등하며 모아야 하는 돈을 순식간에, 매도자의 기분에 따라 올려달라고 하는 거다. 그것도 ‘싫으면 말고. 너희 말고 사려는 사람은 줄 섰어’라는 태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기분은 상하셨겠지만, 1500을 올려주더라도 이건 잡으셔야 해요.” 공인중개사가 간곡한 목소리로 설득한다. 그렇다. 지금 같은 부동산 과열이 조금 더 이어진다면 얼마 뒤, 아마 한두달 안에도 이 가격도 싸게 잘 샀다고 생각할 날이 올지 모른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 내 평생 최고가가 될 쇼핑을 결정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남편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냥 하지 말자. 포기하자.”

정확히 무슨 판단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13억원 대의 아파트라는 물건은 내 능력 밖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던 듯하다. 이렇게 오르면 언젠간 떨어진다는 부동산 할머니의 이야기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거다. 분명한 건 그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쫓기는 기분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단 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당분간 무주택자 생활을 더 이어가기로 했다. 집을 언젠가는 살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2017년 7월, 그때 잡았어야 해'라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지금 이 시장은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그 이상한 시장에 참여자로서 잠시 발을 담금으로써 나는 세상을 조금 배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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