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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4대강 비판 언론 겨냥 “잘못하면 쥐어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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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4일 오후 대선 개입 의혹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검찰은 이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최정동 기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4일 오후 대선 개입 의혹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검찰은 이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최정동 기자]

검찰이 24일 공개한 녹취록에는 원세훈(66)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방선거·총선·대선 등 주요 선거마다 개입을 지시한 정황이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북한과 종북 세력의 사이버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가 “현 정부와 비판 세력을 ‘피아(彼我) 구도’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2012년 총선 후보 교통정리 지시도 #검찰 “정치·선거 개입 유죄 나올 것” #원 “간부들과 나라 걱정 나눈 대화” #국정원TF, 전 정부 불법행위 확인땐 #검찰서 관련자 대거 수사 나설 수도

검찰은 녹취록을 근거로 원 전 원장이 2011년 11월,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 위주로 ‘후보 검증’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18일 녹취록엔 원 전 원장이 “교육감 선거도 (보수) 분열 때문에 졌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니 지부장들이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되도록 챙겨 보라”고 한 발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복현 검사는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상태였다. 보수끼리 분열하지 말고 잘 정리해 진보랑 대결하라는 취지였다”고 해석했다. 2009년 6월 9일 녹취록엔 원 전 원장이 “지자체장이나 의원 후보들을 잘 검증해 (정부에)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되겠느냐 (판단해) 시·구의원에 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듬해 열릴 6·2 지방선거에 대비한 발언이라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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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강 사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 등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해선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09년 12월 회의에서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못 나가게 하든지, 보도 매체를 없애버릴 공작을 하든지… 잘못할 때마다 쥐어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지, 가서 매달리고 어쩌고…”라고 말했다.

이 녹취록은 4년 만에 ‘완전판’이 공개됐다. 2013년 윤석열(현 서울중앙지검장) 여주지청장이 이끌던 국정원 댓글 수사팀은 국정원에 이 녹취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국정원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원 전 원장의 발언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삭제한 녹취록만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출범한 국정원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는 삭제된 내용을 복구해 검찰에 전달했다. 결심 공판에서야 등장한 ‘완전판’ 녹취록에 대해 재판부는 “제출 시기가 늦긴 했지만 증거에 대한 후속절차를 진행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 등의 변호인은 증거 채택에 저항했지만 재판의 빠른 진행을 위해 결국 동의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진술에서 “국정원 간부들과 한 달에 한 번 나라 사정을 걱정하며 나눈 이야기를 범죄로 보는 일부 시각은 너무 안타깝다”고 항변했다

이번 녹취록 공개로 다음달 30일로 예정된 원 전 원장의 선고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재판부는 지금까지의 쟁점과 새로 제출된 녹취록 속 발언 내용을 바탕으로 원 전 원장의 유·무죄 여부, 그리고 유죄일 경우 형량을 판단하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원 전 원장이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와 법리가 완성돼 있다. 파기 환송했던 대법원도 무죄 판단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일부 증거의 증거력을 문제 삼았던 것뿐이다. 유죄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녹취록이 원 전 원장 재판보다 향후 검찰 재수사에서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무일(56) 검찰총장 후보자는 이날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이 만든 ‘SNS 장악 보고서’ 관련 의혹을 재조사하겠다고 말했다. 2012년 ‘디도스 특검팀’으로부터 이 문건을 받은 검찰이 왜 원 전 원장 재판에 활용하지 않고 청와대에 반납했는지 밝혀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적폐 청산 TF의 조사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검찰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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