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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벌들 당분 찾아 도심 쓰레기통도 뒤진다 … 폭염 속 벌떼 조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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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폭염으로 도심의 벌집이 늘고 있다. 주택가 벌집에 말벌이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폭염으로 도심의 벌집이 늘고 있다. 주택가 벌집에 말벌이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다. [중앙포토]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의 한 아파트에 은평소방서 현장대응단이 출동했다. 아파트 4층 베란다에 지름 20㎝가량의 말벌집이 달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다. 현장대응단 정효재(23) 소방사는 벌집 주변에 살충제를 뿌린 뒤 10여 분 만에 벌집을 떼냈다. 정 소방사는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벌집 때문에 많게는 하루에 10회 이상 출동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청량음료·음식을 먹이로 삼아 #주택가·공원 꽃 늘어난 것도 원인 #2015년 서울 소방관 출동만 9200건

최근 폭염이 이어지면서 도심에서 벌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가 벌떼·벌집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례는 2011년 연간 3937건에서 2015년 9195건으로 증가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3만6648건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후 출동 건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은평소방서 홍보교육팀 이성훈씨는 “아파트 단지 베란다, 단독주택 현관, 사찰 천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들이 벌집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말벌떼 출현은 수년 전부터 부쩍 눈에 띄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 주택가나 공원에서 벌이 꿀이나 꽃가루를 얻을 수 있는 꽃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원을 늘리고 있고,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녹지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도시 근처 양봉도 쉬워졌다. 안동대 식물의학과 정철의 교수는 “양봉 농가가 벌통을 과거보다 도심에 가까운 쪽에 설치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길거리 쓰레기통에 남아 있는 청량음료나 음식에 포함된 당분과 같은 인공적인 먹이가 꿀벌을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말벌 성충은 에너지로 당분을 사용한다. 당분을 찾기 위해 도심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정 교수는 “토종 말벌인 털보말벌이나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은 탁 트인 평지를 선호하는 특성 때문에 숲속보다는 도심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독성이 강한 등검은말벌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도시민을 위협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살다 2003년 부산으로 유입돼 서식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최문보 박사는 “등검은말벌은 2013년 무렵엔 영남지역에서 주로 발견됐으나 지난해에는 서울과 경기북부에서도 눈에 띄었다.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선재 박사는 “등검은말벌은 국내에서 월동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됐는데 워낙 개체수가 많고 도심에 천적이 없어 일부가 살아남아 번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종·외래종 가릴 것 없이 말벌에는 쏘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정 교수는 “말벌은 꿀벌보다 독샘 크기가 훨씬 크고 여러 차례 공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벌집이 작아 보이더라도 직접 제거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119에 신고하는 것이 안전하다. 벌에 쏘였을 경우 손 대신 카드 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 남아 있는 벌침을 빼내고 깨끗한 물로 상처 부위를 씻은 뒤 소독하는 것이 좋다. 노약자는 말벌에 쏘이면 쇼크로 인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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