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인사들의 왜곡된 언론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국정홍보의 둘째 책임자인 국정홍보처 차장이 22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은 언론과 기자에 대한 폄하로 가득 차 있다. 한국 언론의 실상을 과장해 비난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얼마 전에는 외교부의 한 고위 간부가 국정토론장이라는 데서 "부처 공보관은 기자들에게 술 사주는 것이 그 역할"이라는 막말을 하더니 급기야 언론을 담당하는 부처 책임자까지 언론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적대적 발언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우선 기고 자체가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홍보처 차장의 기고는 이 신문의 지난 18일자 칼럼에 대한 반론 성격이다. "평가성 기사라도 논박하고 법적 대응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盧대통령의 언급에 따라 나온 반론인 것으로 보인다. 칼럼이라는 것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필자의 주장인데 굳이 정부 차원에서 반론을 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고 내용도 낯뜨겁다. 그는 "공무원들이 기자들과 술먹고 밥먹고 정기적으로 돈봉투도 돌려왔다"거나 "많은 한국 기자는 사실에 대한 1차적 확인조차 없이 보도했다"고 했다.

이는 기자들의 명예를 정면으로 훼손한 것이다. 정부가 그 구체적 증거를 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한 언론과 기자가 있다면 정면으로 밝혀라. 왜 밝히지 못하고 언론 전체를 음해하려고만 드는가.

정정.반론 요구의 80%가 수용된 것을 언론개혁의 명분으로 든 것도 논리가 맞지 않는다. 반론은 당사자의 요구가 있으면 대체로 게재하는 게 현실이다. 또 수천.수만건의 보도 중 30건 정도가 그 대상이 됐을 뿐인데 그것을 마치 한국 언론은 오보나 하는 것처럼 왜곡해서야 되겠는가.

그는 기고내용이 문제가 되자 "영역(英譯)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외국 유력신문에 기고하면서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는 변명은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오보를 낸 데 대해 정부 차원의 분명한 사과와 조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