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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당끼리 담판은 옛말 … 추경 처리서 여소야대 다당제 위력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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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재인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앞서 이날 오전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표결이 지연되자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이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대표, 정양석 바른정당 원내수석부대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앞서 이날 오전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표결이 지연되자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이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대표, 정양석 바른정당 원내수석부대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진정한 정치가 시작됐다.”

교섭단체 네 당이 모두 플레이어 #120석 여당 “우리가 을 중 을” #3, 4당은 중재역으로 몸값 올라

최근 국회 선진화법 구도 속에서 정부조직법안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을 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냉혹한 현실정치를 의미하는 ‘레알폴리틱’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에 더해 원내교섭단체만 4당인 정당 체제의 본격 가동을 두고서다.

① 완벽한 경색도, 일대일 담판도 사라졌다=사실상 양당 체제였던 과거에 정국을 주도하는 건 원내 1·2당이었다. 정국을 멈춰세우는 것도, 그 정국을 푸는 것도 결국 두 당이었다. 경색 해소를 위해 때때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번엔 달랐다. 결과적으로 네 당이 다 ‘플레이어’였다. 정부조직법안 땐 국민의당이 여권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법안 처리의 가닥이 잡혔다. 추경을 두곤 21일 오후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당과의 야3당 공조에서 이탈하면서 결국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여야3당 합의안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야권 인사는 “과거엔 교착 상태에 빠지면 말 그대로 교착 상태였다”며 “이번엔 야당 중 한 곳이라도 돌아서면 협상 국면이 만들어지더라”고 했다.

② 여권의 머릿수 확보 전쟁=예전 여당 원내대표들은 한두 곳만 상대하면 됐는데 이제는 세 당과 상대해야 한다. 비교섭단체지만 정의당도 외면하기 힘들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내가 을(乙) 중의 을(乙)”이라고 말한 이유일 터다. 과반(150석)에 턱없이 부족한 120석 여당으로서의 한계다.

여권은 이번 처리 과정을 두고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어떻게든 국민의당·바른정당의 도움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첫 추경이나 정부조직법안은 야당들로선 “웬만하면 해주자”는 사안이다. 애초 크게 충돌할 사안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증세 등 쟁점 법안이라면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들은 이념적인 성향이 강해 야당을 설득할 만큼의 체계성이나 전문성이 확보돼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야권에선 “우원식 원내대표가 야당의 협조를 구한다며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공개하고 연출했을 뿐, 합의하려는 진정성은 부족했다. 우리를 진정한 협치의 대상으로 여기는지 의문”이란 불만도 있다.

여당으로선 집안 단속이란 숙제도 안았다. 22일 추경안의 본회의 처리 때 민주당 의원 26명이 불참하는 바람에 본회의장을 떠났던 자유한국당 의원 일부가 돌아온 후에야 처리하는 ‘망신’을 겪었다. 머릿수 확인이란 기본 중의 기본에 실패한 셈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말 중요한 추경에 있어서 (민주당 의원들이) 외국에 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③ 극단적 투쟁 불가능해진 자유한국당=과거 제1야당은 강경투쟁을 자양분 삼아 여당의 맞상대란 정치적 존재감을 키워가곤 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민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는 게 이번 국회에서 확인된 셈이다. 박형준 전 수석은 “나홀로 스탠스를 견지하면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1야당으로서 존재감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은 한국당과 국민의당·바른정당 사이의 틈을 파고 들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부터 국민의당·바른정당 지도부엔 감사한다면서 한국당을 향해선 “(본회의 불참으로) 국회를 농락했다”고 비난했다.

④ 국민의당·바른정당의 미묘한 줄타기=국민의당은 상대적으로 왼쪽, 바른정당은 오른쪽 성향을 드러내며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일종의 ‘캐스팅보트’다. 야3당 공조로 협상력을 키우다가 막판 선회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들 정당이 언제까지 이런 협상 지위를 누릴지는 미지수다. 국민의당(40석)은 근거지인 호남을 두고 민주당과, 바른정당(20석)은 보수 정통성을 두고 한국당과 생존을 건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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