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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빌딩으로 식량난 해결하고 도시 생태계도 개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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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21면

[IT는 지금] 도심에 세워지는 수직형 농장

스웨덴 기업 플란타곤이 짓고 있는 농업빌딩. [사진 플란타곤]

스웨덴 기업 플란타곤이 짓고 있는 농업빌딩. [사진 플란타곤]

국내외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 장기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는가 하면 집중호우로 농작물이 휩쓸려 가고, 이어지는 병충해로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다보스포럼을 운영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지구 온난화, 가뭄과 홍수, 도시화에 따라 이상기후가 발생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면서 식량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려진 건물 재활용해 환경 개선 #농약 안 쓰고 물 사용량도 70% 감소 #조명·난방 비용 많이 드는 게 문제 #태양광·지열 등 활용 방안 모색 중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10년마다 전 세계 식량이2%(약 440만t)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과 홍수 또한 식량 생산에 피해를 준다. WEF는 2014년 미국의 홍수로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20%에 달하는 1020만t이 손실된 것으로 추산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 자체도 식물의 생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식량 생산을 감소시킨다.

이에 더해서 도시화도 식량부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유엔이 발간한 ‘세계 도시화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은 2014년 54%에서 2050년에는 66%로 늘어날 전망이다. 도시화는 농작물 생산을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다. 도시화를 위해 새로운 거주 지역을 개발하다 보면 경작지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경지 면적은 지난 10년간 서울과 인천을 합한 만큼 감소했다. 게다가 도시화로 농촌 인력이 줄어들면 땅이 있어도 농작물 생산량은 줄어든다.

반면 농작물 수요는 늘어난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인구가 현재 약 75억 명에서 2050년에는 9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식량부족 문제를 겪고 있지 않지만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식량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8000만 명에 달한다. 이런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질 것이다.

미국·싱가포르·스웨덴 등서 투자 활발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수직형 농장 에어로팜스. [사진 에어로팜스]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수직형 농장 에어로팜스. [사진 에어로팜스]

이 같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수직형 농장(Vertical Farm)’이다. 수직형 농장은 1999년 딕슨 데스포미어 컬럼비아대 교수가 제안한 것이다. 고층 건물 내에 농장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개념이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빛, 토양 그리고 물은 건물에서 공급한다. 특히 빛의 경우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외부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지리적인 공간의 제약도 적다.

공장에서 식물을 재배한다는 개념은 1957년 덴마크 크리스텐센 농장에서 새싹 채소를 인공 환경에서 생산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1960년대에 미국 제너럴밀스 등 대형 농업회사들이 식물 공장의 상용화를 시도했지만, 수익대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사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데스포미어 교수가 50층 높이의 수직 농장을 세워 5만명에게 농작물을 공급하는 모델을 제시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생산력은 같은 면적의 일반 농장 대비 75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팜드히어는 2010년 시카고에 미국 최초의 수직형 농장을 구축했다. 8,361㎡(약 2600평)의 버려진 땅에 6층 건물을 세우고 흙이 아닌 물에 뿌리를 내리는 수경재배 방식으로 24시간 내내 농작물을 재배한다. 아침마다 상추·바질·케일 등을 수확해 30분 안에 시카고 도심의 대형마트로 배달한다. 이 지역의 긴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키울 수 있고,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병충해를 차단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2013년 6월 스카이그린스를 만들어 하루 평균 500㎏의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좁은 국토 면적 때문에 전체 채소 소비량의 7%만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었던 싱가포르에선 스카이그린스와 같은 수직형 농장이 대안인 셈이다. 스웨덴 업체인 플랜타곤 역시 도심에 유리로 만든 수직 농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수직형 농장에 대한 관심이 작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2009년 수원의 국립농업과학원에 수평형 식물 공장을 만들고,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이 채소를 기를 수 있는 밀폐된 컨테이너 농장도 개발했다. 2011년에는 경기도 화성의 농업기술원에 3층 높이의 수직형 농장을 만들었다. 낮에는 태양광 발전으로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고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70%는 지열로 얻는다. 서울특별시 역시 46억원을 들여서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은평구와 양천구에 수직형 농장을 건설하고 있다.

수직형 농장은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비용이다. 수직형 농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은 평균적으로 일반적인 온실의 17배에 달한다.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특히 태양광이 아니라 인공조명을 사용하고,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든다. 스카이그린스가 건물을 유리로 만들거나, 국내의 수직 농장이 태양열·지열 등을 활용하는 것도 비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다.

연 23% 성장해 2023년 7조원 달할 전망

심야를 비롯해 전기요금이 낮은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가동하는 등의 방법도 쓴다. 효율이 높은 LED 조명의 단가가 낮아지고 신재생 에너지 설치·운용 비용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 역시 수직형 농장의 미래를 밝히는 요인이다.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전 세계 수직형 농장 시장 규모가 2023년에 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시장규모 자체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연 평균 성장률은 23.6%에 달한다.

수직형 농장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식량 공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 생태계를 개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도시 주민들이 농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외곽지역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직형 농장은 도시 내에서 조성할 수 있고 환경도 자동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나 집 근처에서 직접 농사를 체험하기에 유리하다. 실제로 부산 부민동에서는 주민 50여명이 52m²건물에 수직형 농장을 조성해 유기농 채소를 재배한다. 직접 기른 싱싱한 채소를 바로 집에 가져와서 먹을 수 있는 데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도시 환경 개선에도 작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뉴저지의 에어로팜스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유휴 공장을 활용해서 수직형 농장을 조성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버려진 건물을 활용해 250여 종의 채소를 기르는데 살충제를 쓰지 않고도 일반 경작지보다 생산량이 70배 높다. 영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방공호 시설을 활용해서 수직형 농장을 구축했다. 런던 남부 클래펌에 조성한 지하 농장에서는 매년 20t의 채소가 생산된다. 일본 미야기현에서는 반도체 공장을 리모델링한 수직형 농장에서 상추를 재배한다. 생산 속도가 일반 경작지보다 약 2.5배 빠르다. 이처럼 버려진 건물 혹은 공장을 수직형 농장으로 조성해 혐오스러운 장소를 유용한 장소로 바꿀 수 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환경 오염을 줄이는 로컬푸드 운동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시카고 팜드히어는 생산된 채소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평균 40㎞를 이동한다. 캘리포니아 남부나 플로리다 남부에서 생산된 채소가 수천㎞ 떨어진 북부의 대도시까지 운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에서도 도심형 수직 농장이 활성화되면 스페인이나 남 프랑스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과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직형 농장 자체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친환경적이다.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데다가 물 사용량은 일반적인 농장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공기 중의 수증기까지 재활용할 경우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준으로 물 사용량이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수직형 농장은 식량 공급 증가뿐만 아니라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비용이 높은 편인데도 적지 않은 투자가 이뤄진다. 에어로팜스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자들이 운영비를 대고 있다.

한국 정부도 수직형 농장을 활용해 국내 식량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 삶의 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운영비 절감과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민간 차원의 사업모델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정부에서도 건물주들이 수직형 농장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투자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유성민 IT칼럼니스트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및 보안솔루션 전문가. 전기차, 스마트시티 사업 분야를 거쳐 현재 보안 솔루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위협』과 『미래전쟁』 등의 역서를 냈다. http://blog.naver.com/dracon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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