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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어려워 무죄 많았던 방위산업 비리, 이번엔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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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10면

검찰 수사, 수리온 이어 T-50·F-X 로 향하나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7 국방 과학기술 대제전’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헬기 수리온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검찰은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개발비를 빼돌린 정황 등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7 국방 과학기술 대제전’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헬기 수리온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검찰은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개발비를 빼돌린 정황 등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연합뉴스]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거침없다. 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24일)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매서운 칼끝을 들이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가 지난 14일 수사관 100여 명을 투입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국산 헬기 ‘수리온’ 개발업체인 KAI가 원가 계산서를 허위 작성하는 수법으로 개발비를 빼돌린 혐의 등에 따른 것이다.

“이적행위” 정권마다 청산 강조 #법원선 증거 부족 판단 잇따라 #검찰 “법원, 군 이해 모자라” 불만 #일각선 “실적 위주 수사 한계” 지적 #수사 위주의 문제 해결책 벗어나 #무기 구매 시스템 획기적 개선 필요

전 정권서도 비리 척결 큰 효과 보지 못해

이때만 해도 단순 내부 비리 수사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방산 비리는 이적행위다”고 언급함에 따라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차기 전투기(F-X)사업’ 등에 대한 대대적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같은 청와대발(發) 방산 비리 사정 드라이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비리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실적 위주 수사로 방위산업 근간만 흔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수차례 검찰 수사로 방산 비리 척결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대대적 수사로 기소된 군 최고위급 장성들이 최근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검찰 수사가 방산 비리 척결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방산·군납 비리와 같은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한 달 뒤 대검찰청은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을 출범시켰다. 검사 18명을 포함해 국방부·경찰·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직원까지 총망라한 100명이 넘는 매머드급 수사단이었다. 합수단은 이듬해 7월 전·현직 군장성 10명을 포함해 63명을 기소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집계한 비위 사업 규모만 9809억원이었다.

지난 13일 서울고법에서 무죄가 선고된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지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고법에서 무죄가 선고된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지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1년여 뒤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8월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다. 검찰은 정 전 총장이 2009년 성능이 부족한 음파탐지기의 시험결과보고서를 허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봤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지난 1월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같은 혐의를 받은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억원대 전투기 정비대금 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천모 예비역 공군 중장도 지난 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 13일에는 서울고법이 해상 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어선에도 탑재 못할 음파탐지기 달았는데…”

검찰 내부에선 잇따른 무죄 이유에 대해 법원의 군 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한다. 검찰 관계자는 “고위직 인사들은 실무상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군 조직 특성상 실무자가 단독으로 무기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등의 비위를 저지를 순 없다. 만들지도 않은 헬기를 적합하다고 하고 군함에 어선에 탑재하는 수준도 안 되는 음파탐지기를 달았는데 어떻게 그냥 놔두나. 자꾸 정치색을 씌워서 보면 안 된다. 방위사업 분야는 어느 나라나 법의 사각지대다.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가지만 검증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방위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잘 모르는 검사들이 실적 위주로 수사하다 보니 불거지는 한계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방산 분야 전문인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무기 도입 결정은 정량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정성적인 부분이 크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필요한 무기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자가 결정하면 실무자들은 거기 맞춰서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나중에 떨어진 업체 입장에서 보면 특정 업체 봐주기로 보일 수 있다. 좋은 무기를 사는 건데 로비받은 것으로 오해받기 쉬운 구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도구인데 로비를 받고 장난을 쳤다면 정말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특수한 맥락을 무시한 수사 일변도의 해법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는 전 정권 때와는 다소 성격이 달라 검찰 수사로 해결하는 게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적정한 성능의 헬기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 수사라서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헬기 개발이 6년 만에 될 일이 아니다.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우리나라가 탱크 개발에만 30년 걸렸다. 해외 각국도 헬기 개발을 위해 수십 년씩 노력한다. 개발비가 한정된 상태에서 벌어진 시행착오에 대해 수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사 위주에서 탈피해 방위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해결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직 군 장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로 모든 걸 해결하려다 보니 정권마다 반복되고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것이다. 비리는 ‘핀셋 수사’로 걷어내되 선진 외국의 무기 연구개발 및 무기구매 시스템을 참고한 획기적인 구조 개선안 마련에 전력을 기울여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제·이유정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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