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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맞춤형 농촌마을? 꿀피부 만들고 쑥뜸체험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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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마을③ 전북 완주 안덕마을 

모악산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북 완주 안덕마을. 계곡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모악산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북 완주 안덕마을. 계곡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안덕마을을 찾아온 여행객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금장굴. 일제 강점기 금을 캐던 광산의 갱도다. 

안덕마을을 찾아온 여행객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금장굴. 일제 강점기 금을 캐던 광산의 갱도다. 

시집온 며느리가 도망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전북 완주 구이면 안덕마을 얘기다. 모악산 자락에 꼭꼭 숨어있는 이 마을은 말 그대로 산골 벽촌이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KTX를 타고 2시간, 전주역에서 이른바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전북 완주 구이면사무소까지 차로 30분. 그러고도 여기서 차로 20여 분을 더 들어가야 겨우 안덕마을에 닿는다.
이런 깡촌을 쉽게 견뎌내는 여자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 농촌 마을은 며느리가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여자들이 앞장서 찾아가는 여행지로 입소문이 났다. 의구심과 호기심을 해소하러 7월 14일 안덕마을을 찾았다.
150가구가 들어선 마을은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모악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계곡 양옆으로 멋들어진 한옥과 담장 낮은 황토집이 어깨를 잇댔다. 마을 주민들이 2009년 안덕파워영농조합법인(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여행객이 쉬어갈 만한 곳으로 꾸준히 가꿔온 덕분이었다. 마을 여행의 테마는 ‘건강’과 ‘힐링’. 안덕마을 유영배(52) 촌장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제대로 휴식할 수 있는 농촌체험마을로 알려지면서 2016년 한 해 동안 10만 명이 방문했다”고 소개했다. 또 “여행객 중 여성이 절대다수”라고도 덧붙였는데, 실제로 마을 어귀에는 30~40대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을 투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전통 구들장 방식으로 난방을 하는 안덕마을 한증막.

전통 구들장 방식으로 난방을 하는 안덕마을 한증막.

‘여성 전용’ 코스로 안내하겠다는 유 촌장을 따라 마을 안쪽 한증막부터 가봤다. 벽과 바닥을 황토로 빚어 전통 구들장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었다.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한증막 덕분에 안덕마을은 ‘건강촌’으로 유명해졌다. 겨울에는 하루에 참나무 장작 2t, 여름에도 1t을 때 저온방(섭씨 40도), 고온방(80도) 온도를 유지한단다. 안 그래도 푹푹 찌는 한여름에 한증막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구들장에는 수건을 목에 걸고 땀을 빼는 여성이 여럿이었다. “의외로 시원하다”는 체험객의 증언(?)에 용기를 얻어 40도로 맞춰진 저온방에 들어갔다. 노폐물이 섞인 땀을 배출해서였는지, 밖으로 나오니 몸이 개운해졌다.
에어컨이 나오는 ‘얼음방’에서 한숨 자야겠다 싶었는데, 안덕마을 한증막에는 당최 냉방기 한 대가 없었다. 대신 체험객이 한껏 달아오른 열을 식히는 장소는 따로 있었다. 한증막 내부 통로로 갈 수 있는 동굴 ‘금광굴’이다. 금광굴은 천연동굴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금을 캐던 광산으로 들어가는 갱도다. 지금은 천연 냉방이 되는 여행객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50m 이어진 동굴 안은 들어서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했다. 여행객들은 동굴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동행과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었다. 제대로 피서지를 찾아온 기분이었다. 한증막은 안덕마을 한의원과도 연결돼 있다. 한의사가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상주하며 맥을 짚어주고 침이나 뜸 치료를 한다. 뜸 치료를 받으며 얼굴에 팩까지 붙이니 피부가 매끈해졌다.

안덕마을 한의원. 한의사가 상주한다.

안덕마을 한의원. 한의사가 상주한다.

쑥뜸 체험을 하는 여행객들.

쑥뜸 체험을 하는 여행객들.

여행에서 식도락이 빠지면 서운한 법. 안덕마을 한의원 옆 마을 식당을 찾았다. 밥과 반찬을 덜어먹는 한식뷔페 식당이다. 안덕마을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장이 나오고, 밭에서 갓 수확한 고추와 파프리카가 올려져있다. 식재료 70%는 안덕마을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한다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레스토랑으로 불러도 손색 없었다. 땀을 흘려서인지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묵은지 맛 덕분인지 두어 번 그릇에 음식을 다시 채워와 먹었다. 전북 익산에서 친구들과 놀러왔다는 소민선(42)씨는 “유명 관광지는 사람 때문에 피곤해지기 일쑤인데, 한가로운 농촌마을에서 찜질도 하고 시골 밥을 먹으니 제대로 쉬는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마을 조합이 운영하는 식당. 안덕마을에서 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마을 조합이 운영하는 식당. 안덕마을에서 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여행객이 모이면서 쇠락해가던 안덕마을은 확실히 되살아난 듯 보였다. 농사일을 놓은 어르신이 한증막이나 마을 식당에 재취업하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귀향·귀촌 행렬도 줄을 이었다. 안덕마을 출신인 안덕파워영농조합법인 임옥섭(43) 사무장 역시 도시로 나갔다가 고향으로 되돌아온 사례다. 임 사무장은 “2009년 마을 주민이 15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00명을 넘어섰다”면서 “오히려 도시보다 안덕마을이 일자리가 많아 신바람 나는 일터가 됐다”고 자랑했다.

안덕마을은 3대가 찾는 가족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안덕마을 촌장 유영배씨와 함께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안덕마을은 3대가 찾는 가족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안덕마을 촌장 유영배씨와 함께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마을 한편엔 어린이 전용 어드벤처 시설도 있다.

마을 한편엔 어린이 전용 어드벤처 시설도 있다.

한증막이나 뜸 체험, 마을 식당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한 안덕마을에서 방문객은 숙박비를 제외하고 1인 평균 1만~2만원의 체험비를 쓰고 돌아간다. 펜션과 카라반 등 숙박시설 투숙률도 평균 70%에 이른다. 안덕마을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행복마을 소득체험 부문 은상을 수상하게 된 배경이다. 안덕마을의 성공은 완주에 농촌체험마을 붐을 일으키는 계기도 됐다. 박성일(62) 완주군수는 “완주군에 슬로푸드·전통체험 등을 테마로 한 10개의 농촌체험마을 육성하면서 활력 있는 농촌 만들기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안덕마을은 ‘여자’를 위한 여행지에서 '3대'가 찾아오는 농촌체험마을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여행객을 위해 농산물 수확하기, 천연염색 등의 체험도 시작했다. 외진 산간마을에 힐링을 찾는 여행자의 발길이 계속 머무는 이유를 알 듯했다.

안덕마을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한약재를 우려낸 물로 황토를 비벼 벽을 만든 황토방 펜션.

안덕마을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한약재를 우려낸 물로 황토를 비벼 벽을 만든 황토방 펜션.

◇여행정보=안덕마을은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차로 가는 게 낫다. 서울시청에서 안덕마을까지 3시간 30분 걸린다. 안덕마을 한증막은 24시간 운영한다. 어른 8000원, 어린이 6000원. 펜션은 8만원부터, 카라반은 7만원부터 숙박할 수 있다. 안덕마을에서 숙박하면 한증막을 1인당 2000원을 할인해준다. 계곡에서 물고기 잡기, 인절미 만들기 등 가족 체험은 20명 이상부터 가능하다. 체험비는 내용에 따라 1인 3000~7000원. 숙박을 하면 바비큐 시설을 이용해 음식을 해 먹어도 된다. 마을에는 조합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아침·점심·저녁을 모두 제공한다. 한식뷔페 1인 7000원. 063-227-1000.

안덕마을 한증막 10만 명 찾는 지역 명소 #에어컨 대신 인공동굴서 서늘한 휴식 #갓 수확한 로컬 채소로 시골밥상 맛봐 #여성용에서 3대용 관광지로 변신중

완주=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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