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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 5개년 계획] '주거복지'로 무게중심 옮긴 주택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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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윤곽을 드러낸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은 크게 ▶공공 임대주택 확대 ▶청년ㆍ신혼부부 주거부담 경감 ▶도시재생 뉴딜로 요약된다. 세 추진 과제 모두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약한 내용이다. 부동산 시장 부양보다 주거복지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6ㆍ19 부동산 대책' 같이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는 내용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서민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환경 조성’ 과제는 공공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핵심이다. 무주택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기관이 직접 공급ㆍ관리하는 장기 임대주택 13만 가구, 민간 소유지만 공공기관이 토지 장기임대나 주택도시기금, 구조변경(리모델링)비를 지원해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임대 기간을 장기화한 공공지원 임대주택 4만 가구 등 매년 공적 임대주택 17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자료: 국토교통부

자료: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가 올해 발표한 공공 임대주택 공급 목표치는 12만5000가구다. 공공지원 임대주택을 제외하면 11만 가구다. 공공 임대주택을 매년 13만 가구씩 공급하겠다고 밝힌 만큼 매년 2만 가구씩 늘리는 셈이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는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낡은 주택을 정비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임대주택을 늘리겠다. 재원 마련 대책도 세세하게 검토한 만큼 무리한 대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공 임대주택 매년 17만 가구 공급하고 청년ㆍ신혼부부 부담 경감 #뉴타운ㆍ재개발보다 구도심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 뉴딜' 추진 #'6ㆍ19 부동산 대책' 같은 시장 규제는 빠져

하지만 “2만 가구 정도는 쉽게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은 “2만 가구 늘리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과 맞부닥친다. 최근 국토연구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 저소득 임차가구 대비 공공 임대주택 거주 비율은 49%로 나타났다. 특히 공공 임대주택이 밀집한 경기(30만9037가구)ㆍ서울(23만5451가구)은 40%에 못 미쳤다. 수도권에서만 60% 이상이 공공 임대주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허재완 중앙대 도시계획ㆍ부동산학과 교수는 “단순히 임대주택 숫자를 늘리기보다 필요한 사람이 임차해 주거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입지와 임대료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임대주택을 늘려 혜택을 주려고 하는 계층은 청년ㆍ신혼부부다. 국정과제엔 신혼부부에게 2022년까지 신규 공공 임대주택의 30%(20만 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내년 중 신혼부부 전용 전세ㆍ구입자금 대출 상품을 출시하고 저소득 신혼부부 대상 주거비 경감 지원책도 마련한다. 교통이 편리한 대도시 역세권에 시세보다 낮은 청년 임대주택을 임기 내 20만실까지 확보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학 소유 부지와 인근지역을 개발해 대학 기숙사 입주 인원도 현재보다 5만 명 늘릴 계획이다.

다만 임대주택 숫자를 충분히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신혼부부 30% 할당’ 같은 목표에 맞추려다보면 결국 다른 계층 분양 비율을 줄여야 한다. 김덕례 주택사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주거복지 수혜가 특정 계층에 몰리면 형평성 논란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 임대주택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리츠(REITsㆍ부동산투자신탁) 같이 다양한 부동산 금융 기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재원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먼저 지자체ㆍ건설업체에 인센티브를 줘 참여를 유도하고, 공공 임대주택 공급량은 장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자료: 국정기획위원회

‘갈아엎기식’ 재개발보다 ‘도시재생’에 초점을 맞츨 것도 예고했다. ‘도시경쟁력 강화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 뉴딜 추진’도 국정 과제에 포함시켰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뉴타운ㆍ재개발 사업을 중단한 500여 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임기 내에 살려 내는 것이다.

뉴타운ㆍ재개발이 전면 철거를 전제로 한다면 도시재생은 지역 실정에 맞춘 ‘리모델링’ 성격이 강하다. 낡은 주택을 정비하고 아파트 단지 수준의 마을 주차장, 어린이집, 무인택배센터 등을 설치해 마을을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중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부처 협업 태스크포스(TF)를 만들 계획이다. 내년부터 도시재생과 연계한 공공임대주택을 본격 공급한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을 밝혀놓지는 않았다. 현재 도시재생 사업 예산은 연 1400억원 정도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도시재생 사업에 매년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택도시기금과 LHㆍSH 등 사업비도 매년 8조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연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들일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때 4대 강 사업(총 22조원 투자)보다 배 이상 투자액이 많다.

하지만 LH 부채는 80조원, SH 부채는 16조원에 달한다. 두 기업 모두 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연 10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사업인데 ‘뭘 하겠다’는 얘기만 있고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집값 급등, 부동산 투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ㆍ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같은 부작용도 우려된다.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이 쏟아져 나왔던 2006년 한 해 동안 서울 집값은 20%가량 급등했다. 뉴타운 후보지를 대상으로 한 단타 매매 같은 투기도 극성을 부렸다. 심교언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도 결국 누군가 개발이익을 가져갈 텐데 이를 어떻게 규제할지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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