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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불법조성 용인 '최태민 가족묘', 8개월째 이장 안된 채 잡초만 무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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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성된 최태민씨 부부묘가 여전히 이장되지 않은 채 있다. 김민욱 기자

불법조성된 최태민씨 부부묘가 여전히 이장되지 않은 채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 18일 오후 3시 경기도 용인의 처인구 유방동의 한 야산. 용인지역 명산 석성산(해발 471m) 끝자락과 이어지는 산이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본명 최서원·61·구속)씨 부친 최태민(1994년 사망)씨, 부인 임선이(2003년 사망)씨 합장묘 등이 있다.

용인 처인구 유방동 한 야산에 여전히 자리해 #누군가 출입 제한하려는 듯 나무로 산길 막아놔 #관리 제대로 안돼 잡초 무성, 조화는 팽개쳐져 # #市, 지난해 11월 이장 및 원상복구 방침 세워 #지난 4월말 최순실에게 행정처분통지서 발송 #10월까지 이장 안할 경우 年2차례 500만원씩 벌금 #강제 이장 근거 없어 영영 불법조성 묘 못 옮길수도

좁은 산길에는 누군가의 출입을 막으려는 듯 반 아름 정도 돼 보이는 나무를 쓰러뜨려 놨다. 10m쯤 위로도 비슷한 굵기의 나무 하나가 작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기자가 지난 2월 찾았을 때는 없던 것이다. 최태민씨 묘는 최씨와 네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최재석(65) 씨가 관리해왔는데, 아들 최씨가 이 같은 장애물을 설치해놨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도 “전혀 모른다”고 한다.

최씨 부친인 독립유공자 최윤성(1892~1945)씨 묘부터 눈에 들어왔다. 산길과 이어지는 위 묫자리에 그의 묘가 조성돼서다. 아래 묫자리에는 최씨 부부묘가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최태민씨 부부묘. 김민욱 기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최태민씨 부부묘. 김민욱 기자

이들 가족묘 주변으로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특히 최 씨 부부묘 봉분은 이름 모를 잡초가 봉분 높이보다 더 삐쭉하게 올라와 있는 상태다. 앞 상돌 네면은 잡초로 거의 가려졌다. 흰색·노란색·붉은색 국화 조화 두 다발은 누군가 화풀이라도 한 듯 땅 위로 팽개쳐져 있었다. 꽃바구니 역시 엎어졌다.

지석(誌石)의 훼손은 없었다. 비석에 명기된 이름 중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최순실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 세간에 화제가 된 친딸 정유연(정유라로 개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최태민 묘 진입로를 누군가 나무로 막아놓은 모습. 김민욱 기자

최태민 묘 진입로를 누군가 나무로 막아놓은 모습. 김민욱 기자

꼭꼭 감춰졌던 최씨 가족묘는 지난해 11월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후 관할 행정당국인 용인시가 현장점검에 나서 여러 불법조성 사실을 확인했다.

가족묘지를 설치할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행정관청에 신고해야 하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가족묘지의 면적(100㎡ 이하), 봉분 높이(지면으로부터 1m 이하) 등 규정도 어겼다. 묘지 면적의 경우 720㎡ 가량인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의 2.7배 규모다.

지난해 11월 찾은 최태민 가족묘. 화분이 놓여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찾은 최태민 가족묘. 화분이 놓여 있다. [중앙포토]

이에 용인시는 불법으로 조성된 묘의 이전 및 산림 원상복구 명령 방침을 세운 뒤 최순실씨를 포함해 친자매에게 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행정처분사전통지서 등 등기우편물을 3차례 보냈다. 하지만 모두 수취인불명, 폐문부재(잠겨있고 사람이 없음) 등을 이유로 반송 처리됐다. 소재가 분명히 파악된 최순실씨는 당시 특검 조사 등으로 서울구치소(경기도 의왕소재) 내 우편물 반입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최씨 가족묘가 알려지자 훼손을 우려한 아들 최재석 씨가 이장의사를 용인시, 처인구청 등에 밝혔다. 하지만 최 씨는 임 씨가 낳은 친자식이 아니다보니 이장은 커녕 개장 자격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이후 최 씨로부터의 연락은 없다고 한다.

용인시는 최순실씨의 우편물 반입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지난 4월말 서울구치소에 원상복구 명령을 담은 행정처분통지서를 발송했다. 오는 10월말까지 가족 묘를 이장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장사법상 이행강제금은 연간 두 차례까지 부과할 수 있다. 한 회당 부과금액은 500만원이다. 벌금 부과 외에 행정당국이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조치 역시 가능하다.

산지법에 명시된 이행강제금. [자료 법제처]

산지법에 명시된 이행강제금. [자료 법제처]

하지만 불법 건축물처럼 행정기관이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최순실씨가 버틸 경우 불법조성된 최씨 가족묘를 강제로 이장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소재가 정확히 파악된 게 최순실씨 뿐이라 지난 4월 그에게 행정처분통지서를 발송했다”며 “우선 처분기간인 10월말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에서는 강제로 이장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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