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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차이 나는 차이나] 중국 하면 배갈? 와인 생산량 세계 6위, 영국 왕실 납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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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옌타이 장위 와인박물관에는 와인 생산 초기 모습을 재현한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다. [예영준·최승식 기자]

옌타이 장위 와인박물관에는 와인 생산 초기 모습을 재현한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다. [예영준·최승식 기자]

중국술 하면 누구나 마오타이(茅台)로 대표되는 배갈, 즉 백주(白酒)를 떠올릴 것이다. 양꼬치가 유행하게 된 최근에는 칭다오(靑島) 맥주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에도 와인이 있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설마, 배갈에다 포도를 담궈 우려 낸 거겠지, 아니면 ‘짝퉁’ 이거나…” 이런 편견이 착각과 오산으로 이어진다.

대륙 와인의 본고장 옌타이 가보니 #화교 갑부 장비스가 125년 전 시작 #1931년부터 만든 대표주 ‘제바이나’ #국빈만찬 단골, 항공사 1등석 납품

중국은 와인대국이다. 국제와인기구(OIV)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와인 생산량은 11억5000만 리터로 세계 6위다. 이를 뒷받침하는 포도 재배량은 2014년부터 프랑스를 제치고 스페인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중국이 프랑스식 정통 와인을 생산한 역사도 1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2년 동남아에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화교 자본가 장비스(張弼士)가 은화 300만 냥을 투자해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에 장위(張裕)양주공사를 개업한 게 중국 와인의 시발이다. 서태후가 자금을 하사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와전된 것이다. 장비스는 프랑스에서 120가지 품종의 포도 묘목을 들여와 품종 개량을 거듭하고 유럽의 일류 와인 기술자를 초빙했다. 그런 과정에서 카베르네 게르니쉬트라 불리는 옌타이 특유의 포도 품종 샤룽주(蛇龍株)가 탄생했다. 이를 원료로 1931년 생산이 시작된 제바이나(解百納)는 레드베리와 체리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장위 포도주의 대명사다. 세계 28개국에 수출되고 국빈만찬 때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내놓는 ‘중국의 맛’이다. 영국 왕실에 납품하고 세계 주요 항공사의 1등석의 와인리스트에 올라간다.

와인 박물관에는 1953년 북한에서 파견한 실습생 사진도 전시돼 있다. 한복 차림의 여성이 눈에 띈다. [사진 옌타이시]

와인 박물관에는 1953년 북한에서 파견한 실습생 사진도 전시돼 있다. 한복 차림의 여성이 눈에 띈다. [사진 옌타이시]

중국 최초의 와인이 생산됐던 공장은 지금 와인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1912년 중화민국 국부 쑨원(孫文)이 방문해 “맛이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고 찬탄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가 쓴 휘호가 걸려 있다. 위포(于波)관장은 “1915년 와인과 브랜디 등 4가지 상품을 파나마 박람회에 출품해 금상을 받았고 장비스를 비롯한 대표단이 귀국길에 백악관을 방문해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술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물 중에 한복 차림 여성이 등장하는 흑백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1953년 조선(북한)실습동지 발효 실습하면서’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시큼한 술향기가 코끝에 다가왔다. 아직도 실제 사용중인 와인 수장고였다. 와인 3만 병 분량이 들어가는 아시아 최대의 15톤짜리 오크통이 장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시아 최대 15t짜리 오크통 … 3만병 분량

옌타이 교외에 새로이 문을 연 장위 와인시티. 오크통을 본떠 만든 건물은 와인 생산 공장이다. [예영준·최승식 기자]

옌타이 교외에 새로이 문을 연 장위 와인시티. 오크통을 본떠 만든 건물은 와인 생산 공장이다. [예영준·최승식 기자]

옌타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중국 와인의 본산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와인 3병 중 1명은 옌타이산이다. 장위·창청(長城)·웨이룽(威龍)등 중국의 10대 와인 업체 가운데 6개사가 옌타이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위 관장은 “애초 광둥(廣東)출신 화교인 장비스가 아무 인연 없는 옌타이를 선택한 건 프랑스 보르도와 위도가 같고 토양·기후가 비슷해 포도 재배에 적합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미국, 호주 등 본고장 와인업체들도 이 곳에 와이너리를 열고 있다. 황해 해안을 따라 형성된 100㎞ 안팎의 구릉지대에는 장위가 프랑스의 카스텔과 합작으로 만든 ‘샤토 장위카스텔’을 비롯, 20여곳의 와이너리가 밀집해 있다.

옌타이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40분 가량 고속도로를 달리자 새롭게 건설된 ‘장위 와인시티’에 도착했다. 멀리서 본 건물들의 모양새가 특이하다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두가 오크통을 본떠 지은 와인 생산공장이었다. 공장 안은 마치 정밀화학공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유조 탱크 모양의 와인 저장시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이 사이엔 지름 수 밀리미터의 미세한 것에서 어른 팔뚝만한 것까지 굵기가 제각각인 금속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연결해 있었다. 곳곳에 압력계와 온도계가 군데 군데 부착돼 있었고 생산 단계별로 수도꼭지 같은 밸브를 열면 와인이 나와 맛을 감별할 수 있다. 공장 안내인은 “발효, 원액추출, 숙성, 병입, 포장과 출고 작업까지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고 말했다. 간혹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공정을 점검하는 사람 이외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순젠(孫健) 장위 부사장은 “전통 양조법과 현대 과학의 결합을 통해 대량생산은 물론 일정한 수준의 품질 유지·관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토양·수질 오염으로 품질 떨어질까 걱정

와인시티는 생산공장뿐 아니라 연구개발센터, 와인거래소와 와이너리, 테마파크 등 관광시설을 갖춘 거대한 복합단지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부지 면적 413만㎡의 규모에 압도된다. 순 부사장은 “2012년부터 60억 위안을 들여 건설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며 “연간 포도주와 꼬냑 40만t을 생산하고 150만명의 관광객을 수용해 100억 위안의 수입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위 와인은 ‘고려창성공사’란 대리상을 통해 100여년 전 이미 한반도에 진출한 기록이 있다”며 “지금까지 한국에는 장위 자회사가 생산하는 옌타이 고량주만 알려져 있는데 앞으론 본격 와인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위를 비롯한 중국 와인 업체들에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도 날로 치열해지는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중국 젊은 층의 기호는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프랑스나 호주 와인을 찾는 추세다. 또 한가지 중국 와인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공업화에 따른 토양·수질 오염의 영향을 차단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8대 공업지역의 하나인 옌타이도 예외는 아니다. 리밍(李明) 옌타이 상무부부장은 “옌타이는 포도뿐 아니라 체리 등 과일 맛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며 “와인을 비롯한 옌타이의 맛을 지켜나가려면 환경 보호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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