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다시보기] 국내산 미꾸라지 맛보려면 딱 지금!

중앙일보

입력 2017.07.15 00:01

맛대맛 다시보기 ⑬역삼동 원주추어탕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13회는 추어탕(2014년 4월 2일 게재)다.

원주추어탕은 손님상에 작은솥을 놓고 즉석에서 탕을 끓여낸다. 매니어가 좋아하는 통추어탕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넣기 때문에 끓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김경록 기자

원주추어탕은 손님상에 작은솥을 놓고 즉석에서 탕을 끓여낸다. 매니어가 좋아하는 통추어탕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넣기 때문에 끓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김경록 기자

40년 세월 한자리 지켜
역삼동 교보타워 사거리 안쪽 골목에 있는 원주추어탕. 빌딩숲 사이에서 40년 전 모습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역삼동 교보타워 사거리 안쪽 골목에 있는 원주추어탕. 빌딩숲 사이에서 40년 전 모습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서울 역삼동 교보타워 맞은편 골목. 높은 빌딩 숲 사이에 튀는 건물이 하나 있다. 외관이 멋스러워서가 아니다. 40여 년 세월을 혼자 비켜 간 듯 옛 모습 그대로 낡은 겉모습 때문이다. 역삼동에서만 37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주추어탕 건물이다. 이남수(48) 사장은 강남에서 40년 가까이 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집 나무 간판은 30여 년 전 이 사장의 아버지(1987년 작고)가 직접 만든 것이고 쟁반도 사용한 지 20년이나 됐다. 하다못해 1980년대 지붕 밑에 생긴 제비집도 그냥 놔뒀다. 주변에선 “돈 많이 벌었으니 건물을 새로 짓든지, 아니면 인테리어라도 다시 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이 사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남수 사장이 아버지가 직접 만든 간판 앞에 서 있다. 김경록 기자

이남수 사장이 아버지가 직접 만든 간판 앞에 서 있다. 김경록 기자

“이 건물이 74년에 지어졌어요. 물론 안전을 위해 보수공사는 해야죠. 하지만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는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가게엔 나뿐 아니라 그동안 여기를 찾았던 손님들 추억이 담겨있으니까요.”
이 사장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80년대 추어탕 먹으러 자주 오던 한 손님이 미국에 이민을 갔다가 20년 만에 귀국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오자마자 젊은 시절 즐겨 먹던 이 추어탕 집을 찾은 거다. ‘설마 아직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가게를 찾은 손님은 20년 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던 가게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고 한다. 추억에 젖어 추어탕을 먹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교민들이 듣는 라디오 방송에 이 사연을 내보냈다. 이 사장은 “친구가 미국에서 그 방송을 듣고 전해줬다”며 “그런 사연을 들었는데 어떻게 건물을 허물겠느냐”며 웃었다. 남편과 함께 가게를 처음 연 이 사장의 어머니 김옥란(79)씨도 예전부터 아들에게 “내가 살아있는 한 가게에 손 댈 생각 하지말라”고 당부했다.

강남 빌딩숲 속 40년 지킨 원주추어탕
국내산 찾기 어려워 대부분 수입산 사용
7~8월이 국내 자연산 맛볼 기회

식당 지키려 건물 인수
80년 테이블 5개 놓고 시작한 원주추어탕은 이젠 건물 전체를 다 사용한다. 김경록 기자

80년 테이블 5개 놓고 시작한 원주추어탕은 이젠 건물 전체를 다 사용한다. 김경록 기자

김씨가 추어탕집을 연 건 77년이다. 강원도 원주에 살던 김씨는 당시 집 앞에 있던 원주추어탕집 사장과 친해 바쁠 때마다 일손을 도왔다. 그러다 77년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오면서 미아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이 사장의 기억에도 장사가 잘 될만한 곳이 아니었다. 실제로 장사가 안돼 고생만 하다 80년 역삼동으로 옮겼다. 당시 강남은 지금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식당 주변엔 가정집 몇 채만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이상하게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식당 한 귀퉁이인 33㎡(10평) 정도 공간에 테이블 5개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이 사장이 중 1때였다. 장사 첫날 학교갔다 온 이 사장의 눈엔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냅킨이 보였다. 첫날부터 많은 손님이 다녀간 것이다.
첫 날 매출은 8만원. 추어탕 한 그릇에 1500~2000원 하던 시절이니 적지 않은 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은 더 많아졌고 가게도 점점 넓어졌다. 처음엔 같은 건물에 갈비집과 슈퍼마켓·정육점·치킨집 등이 함께 있었는데 이젠 그 자리를 모두 쓰고 있다. 80년대 말 건물 주인이 부도를 내서 건물이 은행에 넘어가게 되자 빚을 내 건물을 인수했다. 이 사장은 “당시 겨우 자리를 좀 잡았는데 쫓겨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은행빚을 지는 무리를 해서 건물을 샀다”고 설명했다.

여름만 맛보는 자연산 미꾸라지
예전엔 손으로 직접 미꾸라지를 갈았지만 기계로 갈아 넣는다. 김경록 기자

예전엔 손으로 직접 미꾸라지를 갈았지만 기계로 갈아 넣는다. 김경록 기자

이 사장은 27살이던 96년부터 식당에 합류했다. 볼링 선수였던 그는 선수생활을 접고 식당일을 돕기 시작했다. 김씨는 아들이 고생하는 게 싫어 처음엔 반대했지만 식당일을 돕겠다는 고집을 끝내 꺽을 수는 없었다. 이 사장은 "추어탕이 우리 전통음식인 데다 건강음식이란 생각에 꼭 직접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채소와 미꾸라기를 썰고 가는 일이 고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다. 건 국내산 미꾸라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 추어탕 가게에서 파는 90% 이상이 중국산일 거예요. 미꾸라지는 양식이 참 어렵거든요. 토종 미꾸라지를 배양하는 것도 힘든데 그 배양한 한마리가 다 크는 데 2년 정도 걸리니까 생산성이 떨어지죠.”
전라북도 남원에 양식장을 만들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산 미꾸라지를 찾았다. 그 결과 13년 전부터 자연산 미꾸라지가 많이 나오는 7월 초~8월 초 한 달 간 자연산 미꾸라지를 태안에서 공수해오고 있다. 이 사장은 “태안을 비롯해 주변 지역에 나는 미꾸라지 맛이 뛰어나다”며 “1년에 한 달간 자연산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을 맛볼 수 있으니 이때 맞춰 꼭 오라”고 말했다.

비결은 직접 담근 고추장
홍천에서 고추장 담그는 모습. [사진 원주추어탕]

홍천에서 고추장 담그는 모습. [사진 원주추어탕]

원주추어탕은 된장을 넣는 전라도나 경상도식과 다르게 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그만큼 고추장이 중요하다. 직접 고추장을 담그는 것도 이 때문이다. 3~5년에 한 번씩 큰 고무 대야로 100통이 넘는 고추장을 담그고 강원도 홍천에 있는 숙성 창고에 보관한다. 16년 전 함께 일하던 친형이 독립해 성남시 서현동에 동일한 상호의 가게를 열었다. 두 곳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고추장 역시 마찬가지다.

3년 전 맛·가격 그대로
맛대맛에 소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어탕 한 그릇에 9000원이다. 김경록 기자

맛대맛에 소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어탕 한 그릇에 9000원이다. 김경록 기자

맛대맛에 소개된 3년 전 이 사장은 “단골이 있고 오랜 신뢰가 있어 경기나 사회적 이슈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할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직원이 다리가 다쳐 쉬었는데 그 빈 자리가 티나지도 않을만큼 손님이 줄었단다. 그는 “식당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이 3년 전 그대로인데도 말이다. 이 사장은 “추어탕 한 그릇 가격이 9000원인데 1000원만 올려도 1만원"이라며 "손님들이 느낄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아 앞으로도 가격 올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워낙 불경기잖아요. 우리 가게도 영향을 받는거죠. 100년 이상 가는 추어탕집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변치 않았어요. 어머니가 만든 이 맛을 잘 지켜서 100년, 아니 200년 가는 식당을 만들겁니다. 다행히 제 아이들이 대를 잇겠다고 하니 든든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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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 추어탕 9000원, 통추어탕 1만원, 메기불고기 5만(소)·7만원(중) ·개점:1977년(80년에 현재 자리로 이전) ·주소: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110길 6(역삼동 809-1) ·전화번호: 02-557-8647 ·좌석수: 120석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설·추석 명절 당일과 다음날 휴무, 석가탄신일 휴무) ·주차: 가능(20여 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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