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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송중기, "아무리 한류스타여도 중요한 건 한국"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그 섬은 기이하게 군함(軍艦)을 닮았다. 전쟁을 위한 병기와 연료, 비명을 가득 품은 거대한 기계를.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7월 26일 개봉)는 일제의 강점기 시절, 일본 하시마(端島)에 탄광 노동자로 강제 징집돼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이름 없는 조선인들을 기린 영화다.

1945년, 하시마로 징용된 조선인 악사 이강옥(황정민)과 경성의 주먹 최칠성(소지섭), 모진 과거를 숨긴 말년(이정현) 그리고 비밀 임무를 받고 하시마에 위장 잠입한 광복군 장교 박무영(송중기)의 사연을 따라간다. 흙과 쇠, 땀과 피가 뒤섞인 지옥 섬에서, 네 인물과 조선인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고 죽기 위해 하나의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

비가 퍼붓던 6월의 어느 날, ‘군함도’의 네 배우가 magazine M 커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해 촬영장에서 보낸 6개월 대장정의 여운을 잊지 않은 이들은, 이 거대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에 대한 단단한 책임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품 선택할 때 대본이 제일 중요하다. 대본이 재미없으면 아무리 큰 역할을 맡았다 해도 사람들이 보지 않을 테니 무슨 소용일까. 지극히 상업영화를 하는 배우 입장에서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게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끼리 잔치할 순 없는 거니까.

 새삼 송중기(32)의 인기를 실감하는 요 며칠이었다. ‘태양의 후예’(2016, KBS2, 이하 ‘태후’)에서 호흡했던 송혜교와의 깜짝 결혼 발표는 다른 뉴스를 모두 삼켜버릴 만큼 파괴력이 컸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그는 가장 뜨거운 이름임이 분명했다.

‘군함도’의 커버 촬영은 그의 결혼 발표 전인 지난달 26일 이뤄졌다. 촬영장 구석에 간이 테이블을 놓고 송중기를 만났다. 오랜 촬영에 지쳤을 배우를 위해 편한 의자를 하나 준비했는데, 그는 “괜찮다”며 기자에게 그 의자를 양보했다. 예의 바르고 반듯하단 인상이었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도 그러했다. 류승완 감독이 “송중기는 촌스럽다 못해 우직하더라. 꾸밈이 없었다”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본이 ‘1000만 영화’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류 감독님의 팬층이 두텁고 전작인 ‘베테랑’(2015)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데, 1000만을 생각하는 건 건방진 얘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소재뿐만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고, 굉장히 애틋한 작품”이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군함도’는 송중기의 제대 후 첫 영화다. 입대 전 ‘늑대소년’(2012, 조성희 감독)으로 665만 관객을 동원했고, 기세를 몰아 다음 영화를 준비하던 차에 입대 영장을 받았다. “군 생활을 굉장히 재밌게 한 편인데, 심적으론 영화를 못 찍고 간 것이 내내 아쉬웠다”고 했다.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

쉬는 시간 틈틈이 매니저가 보내준 다른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베테랑’ 시나리오를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유)아인씨가 저랑 친한 친구지만 이렇게 좋은 시나리오에 참여한다는 게 부러웠죠. 배우의 본능이니까요.” 그는 휴가를 나와서 ‘베테랑’을 두 번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다음 번에 류 감독님이 뭘 주신다면 해야지. 그런데 주실까?’ 얼마 안되어 ‘군함도’의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소름이 돋았다”.

‘군함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바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나라·이념을 떠나서 생존에 대한 서사였다. 특히 마지막 탈출 시퀀스가 압도적이었다. 송중기는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인 박무영 역할에 출연키로 한다. 광복군 주요 인사 구출 작전을 지시 받고 군함도에 잠입하는 인물이다.

“조선인 중에선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군함도에 들어갔어요. 처음부터 대단한 각오가 있던 인물은 아니예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그 때부터 죽을 각오를 하고 조선인들의 탈주를 돕게 되죠.” 박무영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측은지심인 것 같다”고 했다.

촬영은 만만하지 않았다. 불볕 더위와 혹한의 추위가 온몸을 에워쌓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실제 강제 징용됐던 소년들의 사진을 떠올렸다. 하루에 주먹밥 하나로 버티며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모습이었다. 실화의 무게 때문에 어떤 작품보다 살을 빼야 하는 강박관념이 컸다. 그는 여러 장면을 거론하면서 “주연 배우가 부각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조연분들, 조·단역분들, 보조출연자분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일간의 첨예한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라 한류스타로서 부담은 없었을까. “전혀 없없어요. 만약 이 영화가 소위 ‘국뽕’ 영화, 민족주의에 치우쳐 없던 얘기를 지어낸 영화였다면 출연을 안했겠죠.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건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류스타라 ‘안하고, 말고’의 문제를 고민하는 성격은 아닌것 같아요. 한국 작품을 하면서 한류스타가 됐고, 많은 선후배들처럼 제 스스로 무게중심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책임감 있고 조금 더 진지하게 활동해야겠다고. 앞으로 한류 활동은 계속 할 거니까 그렇다면 더욱더 할말은 하면서 활동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아무리 한류스타여도 제게 가장 중요한건 무조건 한국이니까요.”

송중기는 2008년 ‘쌍화점’(유하 감독)으로 데뷔했다. 해사한 소년의 얼굴은 ‘성균관 스캔들’(2010, KBS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 KBS2) ‘늑대소년’에서 아름답게 각인됐다. 4년 만에 컴백한 ‘태후’에선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어른 남자로 자라 있었다. ‘군함도’ 예고편에 공개된 모습도 전에 본 적 없는, 절박하게 날이 서 있는 얼굴이었다.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

그는 “맨날 하얗게 나오다가 더럽게 분장을 해서 달라 보이나”라며 “제 스스로도 그런 얼굴이 좋다. 예전엔 예쁘게 하고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 성격은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태후’의 유시진이나 박무영처럼 반듯한 사람일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최근에 비슷한 느낌의 역할을 하다보니 다음 작품에선 풀어지고 싶다”고 했다.

송중기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천가지 얼굴을 지닌 에드워드 노튼이다. “생각이 멋있잖아요. 충분히 주연을 할 수 있고,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데 좋은 영화가 있으면 따지지 않고 작은 역할도 맡거든요. 연기로는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요. 그게 더 재밌게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문득 역할의 크기에 초연한 이 배우가 자신의 유명세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유명해질수록 공허함은 따라오는 것이니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성격이 무딘 편이라 그런 건 없어요. ‘태후’ 끝날 때 쯤 차태현 선배가 문자를 보냈어요. ‘이제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저는 농담으로 ‘아니, 형, 더 올라갈건데요’ 그랬어요(웃음). 다 겪은 선배 입장에서 진심으로 해준 얘기니까 정말 고마웠죠. 분명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겠죠. 나중에 더 멋있게 내려가려면 넓어지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공도 더 쌓아야 하고. 다작을 하고 싶어요.”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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