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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화 갑상선암이라고 절망하면 안된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정수]

아침 병동 회진 시간, 병동 복도에서 50대 초반 남자 환자 부부가 반갑게 인사 한다. 어제는 갑상상선암센터 외래까지 내려 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부부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표현을 한다.

"교수님께서 주저하지 않고 받아주셔서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사실 이 환자분은 현재 필자 앞이 아니고 젊은 김석모 조 교수 앞으로 입원해 있다.

지난1월19일 늦은 외래 시간에  20대초반으로  보이는 앳띤 아가씨가 다급한 표정으로 진찰실문을 밀고 들어 오며 말한다. 물론 예약이 안된 돌발 환자다.

"교수님, 제 아빠 살려 주세요, 아빠가 K 대 병원에 계시는데 너무 심해 호흡도 힘들고 통증이 심한데 그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진통제만 처방하고 있어요. 교수님, 제발 제 아빠 살려 주세요"

우선 들어 오게 해서 얘기를 들어 보니 전형적인 갑상선미분화암(역형성암이라고도 한다)이 악화되어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2개월만에 그렇게 빨리 진행되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암은 갑상선 미분화암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K대 병원에서도 그렇게 진단을 했단다.

인체의 모든 암중에서 현재 가장 빨리 퍼지고 나빠져서  거의 모든 환자가 단 시간내에 사망하는 악명높은 암인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도 아직 해껼되지 않은 암으로  남아 있어 의사도 환자도 미분화암이라면 희망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 해도 4~6개월을 못 넘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되도록이면 이런 환자를 기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우리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암센터가 어떤 곳인가.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갑상선암 전문치료센터이고 연구기관이 아닌가.
이런 암을 해결하기 위해서 "난치성 갑상암 연구소"까지 설립하지 않았던가.

전 세계에서 포기하다시피한 미분화암 환자들과 난치성갑상선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자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남들이 포기하는 환자들을 우리가 맡아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 연구의 실무 담당은 젊은 김석모교수가 맡고 남은 교수들 모두가 이에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돌발 환자의 보호자인 딸에게 말해준다. "좋아요, 당장 우리 병원으로 옮겨 와요. 빠른 속도로 나빠지니까 서둘러야 될 것 같아요, 환자의 주치의는 내 대신
김석모 교수가 맡을 것입니다. 물론 치료는 서로가 의논해서 할 것이고"

환자는 그 K 병원에서 곧 옮겨와서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는 우리 센터가 개발한 프로토콜(protocol)대로  Pxxxx을 1주에 한번씩 두번 주사하고 동시에 한달 동안 60Gy 토모테라피를 한 후에 수술이 가능한지를 평가하고, 수술이 아직 가능하지 않으면 2주 더 추가하고, 그래도 안되면 또 2주 추가하고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인데,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환자는 2주씩 두번(2cycles)하고  지난 금요일(6월9일)에
완전 제거술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술 이틀 후인 6월 11일,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16차 세계내분비외과 교육프로그램(16th IAES PG Course)을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 환자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를 발표하고 세계의 석학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경이적이라고 감탄을 하였다. 우리의 의료수준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수술 5일째인 오늘, 환자 상태는 만족스럽다. 재발을 억제시키기 위해 1주에 한번씩 두번 더 주사를 맞을 것이다.

그동안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에 따른  엄청난 고통을 잘도 견뎌 내었으니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다. 김석모 교수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다.

"김교수, 이번 치료는 그 딸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거야, 소원이 결혼식 때 아버지 손 잡고 들어 가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 질 것 같은데...ㅎㅎ.."

"그러게요"
 "미분화암이라고 그전처럼 처음부터 완전 절망에 빠져 포기하지는 말아야 되겠지?
그리고 요전에  내가 넘긴 피부와 폐까지 퍼진 미분화암으로 고생하는 민00 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어?"

"그 분도 지금 좋아지고 있어요, 완전 없어지지는 안했지만요" 아직 이번의 경험으로 미분화암의 치료가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칠흑의 어둠속에서 한줄기 희미한 불빛이 될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뒷이야기: 절제된 암덩어리의 정밀병리조직검사 결과, 대부분의 암 조직은 사멸되어 갑상선본체에 2.5.cm 크기의 암이 남아 있었다. 옆목까지 퍼진 거대 암조직은 섬유화조직으로 변해 있었고 그 속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 암세포만 남아 있었다. 장기 생존이 예측된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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