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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경부고속도 참사 계기로 경기도내 버스운전자들의 피로 실태 알아보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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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 추돌사고 당시모습. [연합뉴스]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 추돌사고 당시모습. [연합뉴스]

9일 오후 사망자 2명을 포함해 18명의 사상자를 낸 경부고속도로 수도권 광역급행버스(M버스) 추돌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현재 가해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조사됐다. 운전기사 김모(51)씨가 경찰에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하면서인데, 그가 몰았던 M버스는 '시민의 발'이 아닌 사실상 ‘시한폭탄’이었다.

피로감 쌓인 운전기사 몬 버스 운송수단 아닌 ‘시한폭탄’ #버스업계 인력난 심각, 버스 준공영제 대안으로 떠올라 #버스준공영제 도입한 서울버스는 안전운행 빠르게 정착

김씨가 근무하는 경기도 오산 A버스회사 노동조합 측은 10일 “사고 전날 장시간 근무에 사고 당일 배차시간을 맞추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 운전기사들의 피로 누적과 집중력 저하 등 문제는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졸음운전'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사진 서울 서초경찰서]

'졸음운전'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사진 서울 서초경찰서]

가톨릭대 사회건강연구소의 ‘버스 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연구(2015)’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한다’고 답한 경기도내 광역버스 운전기사는 전체 응답자의 70.1%에 달했다. 이들 중 18시간 이상 차를 모는 운전기사 비율이 15%로 조사됐다. 같은 보고서에서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해 운영 중인 서울시내 운전기사들의 경우 0%로 나타나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서울은 1일 2교대, 경기도는 격일제 근무형태를 조사대상으로 했다.

서울, 경기 버스운전기사 하루 운전시간 [자료 가톨릭대 사회건강연구소]

서울, 경기 버스운전기사 하루 운전시간 [자료 가톨릭대 사회건강연구소]

이 같은 장시간 운전으로 경기도내 광역버스 운전기사들은 서울시내 운전기사들보다 최대 61배 졸음 현상을 겪거나, 집중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속 80㎞ 이상의 빠른 속도로 서울~경기 간 고속도로 구간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경우 운전기사의 피로감·집중력 저하는 이번 사고처럼 자칫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심각하다. 경기도에 따르면 서울~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모두 163개 노선 2132대다.

하지만 도내 상당수 버스회사는 대체로 인력·경영난을 이유로 운전기사 증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기도버스운송사업조합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버스 한 대를 운행하려면 운전기사 2.23명이 필요한데 현재 대당 1.7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운전기사의 총 노동시간이 하루 최대 9시간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는데 경기도내 버스운전 기사들이 인력난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내 광역버스 자료사진. *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경기도내 광역버스 자료사진. *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일본은 ‘자동차 운전자의 근로시간 등의 개선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 하루 9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화물자동차 안전규정을 둬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운전할 수 있지만 비근로시간을 포함해 15시간 이상은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유럽연합(EU)도 하루 9시간으로 운행을 제한 중이다.

김형렬 가톨릭대 보건대학원(직업환경의학) 교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 12시간 이상의 운전시간은 허용돼서는 안된다
”고 말했다. 유성규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버스운전 노동자의 건강은 물론 시민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 운수업에 장시간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입법이 조속히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력난 해소를 통한 안전한 버스운행을 위해서는 서울과 같은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버스 운전기사들은 서울 버스 운전기사들에 비해 월 평균 70시간가량을 더 근무하면서 오히려 급여는 월평균 90만원가량 더 적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이성호 입법전문위원은 “준공영제를 도입해 시행하면 버스 운전기사들의 근로여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근로여건의 개선은 버스 운행 서비스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고위 관계자는 “버스준공영제를 올해 말 시범운영을 거쳐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내 버스운전기사 연령은 50대 이상이 전체 59.2%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오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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