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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25 복날 영양탕·삼계탕 말고 어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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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7월12일)이 코앞이다. 어떤 음식으로 복달임(복날 나기)을 할지 고민이다. 가장 무난한 삼계탕? 아니면 애견인의 눈살을 아랑곳 않고 소신껏 보신탕?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복달임 음식의 전부는 아니다. 예부터 물 맑은 산간 지역에서는 민물고기를 넣어 끓인 어죽을 보양식으로 많이 먹었다. 충북 옥천·영동, 충남 예산·공주, 전북 무주 등에서 어죽을 많이 먹었는데 특히 무주에 유서 깊은 어죽 맛집이 있다.

무주 금강식당 어죽. 첫눈엔 매워 보이지만 민물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해 맵지 않고 오히려 고소하다.   

무주 금강식당 어죽. 첫눈엔 매워 보이지만 민물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해 맵지 않고 오히려 고소하다.   

어죽은 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천렵(川獵)을 마친 뒤 먹는 단골 메뉴였다. 여름날 농사를 일찍 마치고 온 동네 사람들이 개울가에 모여 물고기를 잡은 뒤 불을 지피고 커다란 솥을 걸어 ‘고기죽’을 끓여 나눠 먹었다. 시원한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직접 잡은 고기로 어죽을 끓여 먹는 건 여름날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피서였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어죽은 더위에 사그라든 입맛과 기력을 회복하는 데 효험이 있다. 생선 달인 육수에 단백질과 무기질·칼슘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맑은 물 흐르는 산촌에서는 천렵을 즐겼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푹 끓인 어죽은 여름 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중앙포토]

예부터 맑은 물 흐르는 산촌에서는 천렵을 즐겼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푹 끓인 어죽은 여름 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중앙포토]

조상들이 즐겨먹던 어죽은 레시피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 농학자 유중림(1705~71)이 1766년 펴낸 농업서 『증보산림경제』에 붕어죽 만드는 법이 있다. 붕어 대신 피라미·모래무지·동자개(빠가사리)·메기 등으로 만들어도 레시피는 다르지 않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붕어 배를 갈라 창자를 빼낸다. 비늘을 벗기지 않고 통째로 푹 삶은 다음 대나무 체에 내려 살을 발라낸다. 뼈와 껍질은 버리고 육수에 멥쌀을 넣어 죽을 쑤고 후추와 생강을 곁들인다.

어죽에 가장 많이 쓰는 민물고기인 동자개(빠가사리). [중앙포토]

어죽에 가장 많이 쓰는 민물고기인 동자개(빠가사리). [중앙포토]

토속적인 어죽의 맛을 만나려면 전북 무주로 가야 한다. 무주는 금강과 만나는 적상천·남대천을 끼고 있어 동자개·메기·꺽지 등 민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자연스레 무주에서는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과 어죽이 발달했다. 무주군청 앞 금강식당(063-322-0979)이 어죽 전문 식당 중 원조격이다. 1983년에 고(故) 정정상·김정순(69) 부부가 문을 열었고, 지금은 아내 김씨와 아들 정현(47)씨 모자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몇 해 전까지 금강 상류인 오산천·내도천·부남천에서 직접 민물고기를 잡았으나 지금은 고기를 사다 쓴단다. 단, 무주 인근에서 잡힌 신선한 고기만 고집한다. 그리고 죽과 반찬에 쓰는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만 고집한다.

무주군청 앞에서 35년째 영업 중인 금강식당. 어죽과 민물매운탕을 판다.

무주군청 앞에서 35년째 영업 중인 금강식당. 어죽과 민물매운탕을 판다.

금강식당이 어죽(7000원)을 만드는 법은 250년 전 레시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물고기의 내장을 발라낸 뒤 푹 고아 국물을 낸다. 여름철인 지금은 빠가사리와 메기를 많이 쓴다. 4시간 정도 지나면 살과 잔뼈는 다 녹아 흐물흐물해지고 큰뼈만 남는다. 이 정도만 해도 소 사골국물처럼 뽀얀 국물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뼈를 골라내고 살을 으깬 뒤 한번 더 끓인다. 그리고 육수에 불린 쌀과 수제비를 넣고 고추장을 푼다. 뻘건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소금과 다진 마늘을 넣어 간을 맞춘 뒤 약한 불에 밥알이 퍼질 때까지 끓인다. 다 끓인 죽에 들깨가루를 넉넉히 얹어 먹는다.

금강식당은 신선한 민물고기를 쓰고,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만 쓴다.

금강식당은 신선한 민물고기를 쓰고,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만 쓴다.

금강식당에서 어죽을 주문하면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죽을 미리 쒀두면 금세 퍼지기 때문에 주문을 받을 때마다 한 그릇씩 끓인다. 보기에는 매콤해 보이지만 부드럽게 넘어간다(맵지 않은 하얀 어죽도 있다). 생선살이 모두 녹아 씹히지는 않고 걸쭉한 국물에서 어렴풋이 고소한 맛으로 전해진다. 쫄깃쫄깃한 수제비와 새송이버섯이 들어 있어 씹는 재미도 있다. 양이 꽤 많아 보이지만 한그릇 뚝딱 비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워낙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다.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는다. 민물고기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전혀 거부감없이 먹을 수 있다. 정현씨는 비린내 잡는 노하우만큼은 비밀이라 한다.

맵지 않은 하얀 어죽도 있다. 고소한 맛이 강해 하얀 어죽을 선호하는 단골도 많다. 

맵지 않은 하얀 어죽도 있다. 고소한 맛이 강해 하얀 어죽을 선호하는 단골도 많다. 

손님 대부분이 어죽을 주문하지만 민물매운탕도 판다. 빠가탕(4인분 5만원), 쏘가리탕(2인분 5만원)이 인기다. 쏘가리탕이 두 배 비싼 셈이다. “쏘가리가 민물고기의 왕 아니여유. ” 김정순 사장은 “고기 맛 아는 사람은 쏘가리만 먹지유”라고 말한다. 쏘가리는 양식이 불가능하고 고기 맛도 동자개(빠가사리)보다 훨씬 단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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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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