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섹스·마약으로 물든 바티칸 … 50년 전 미제 살인사건도 수면 위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톨릭 교회가 연이은 추문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바티칸 서열 3위인 조지 펠 추기경이 아동 성범죄 혐의로 호주 경찰에 기소된 데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 측근의 비서가 교황청 소유 아파트에서 마약에 취해 동성애 난교 파티를 벌이다 체포되면서다.

성범죄와 마약 추문이 공교롭게도 일주일 새 연이어 발생했을 뿐, 가톨릭 교회 내 해묵은 의혹이 한 둘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각본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다룬, 보스톤 글로브 기자들의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 추적기도 그 중 하나다.
최근엔 끝내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50년 전 가톨릭 사제의 추악한 범죄가 미국 가톨릭 교회를 달구고 있다.

미제로 남은 1969년 수녀 살인사건 

1969년 11월 7일 밤, 미국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사는 캐시 세스닉 수녀는 귀가하지 않았다. 가톨릭계인 키어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여동생의 약혼 선물을 사러 간다며 집을 나선 참이었다. 결국 두 달만인 이듬해 1월 그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누가, 왜 그를 살해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은 잊혀졌다.

그러나 지난 5월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은 거대한 충격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천사들의 증언(The Keepers)를 공개하면서다.
다큐는 미제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아 나서는 범죄물이면서, 동시에 반세기 동안 은폐돼 있던 가톨릭 교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낱낱이 까발렸다.

성범죄자 신부, 그가 수녀도 살해했나

'천사들의 증언' 포스터. [넷플릭스]

'천사들의 증언' 포스터. [넷플릭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키어 고등학교 교목으로 재직했던 조셉 매스켈 신부. 영화 속에선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당시 여고생들이 할머니가 돼 끔찍한 증언을 이어간다.
매스켈 신부는 어린 시절 친족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고해성사한 학생을 끊임없이 불러내 성폭행하고, 학생에게 “더럽다. 창녀같다”는 폭언을 쏟아냈다. 또 외부인을 불러들여 여고생을 성폭행하도록 하기도 했다.
다큐에는 매스켈 신부에게 성폭행·성희롱을 당한 다수의 피해자 증언이 등장한다. 신부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이들은 평생을 고통에 시달렸다.

다큐는 매스켈 신부를 세스닉 수녀 살해사건의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세스닉 수녀가 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를 밝히려고 하자 살해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큐는 볼티모어 대교구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여전히 모르쇠 일관하는 대교구 

그러나 의혹만 남긴 채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사건의 당사자 상당수가 사망하면서 규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성폭행 및 살인 협의를 받고 있는 조셉 매스켈 신부. 2001년 사망했다. [넷플릭스]

성폭행 및 살인 협의를 받고 있는 조셉 매스켈 신부. 2001년 사망했다. [넷플릭스]

매스켈 신부도 2001년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을 부정했고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볼티모어 대교구가 피해자 16명에게 지급한 합의금은 47만 2000달러(약 5억 4000만원)에 이른다.

다큐가 공개된 뒤 볼티모어에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볼티모어 대교구에 매스켈 신부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는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현지 언론인 볼티모어 선은 지속적으로 관련 보도를 하고 있다.
감독인 라이언 화이트는 볼티모어 선에 “영화를 찍으면서 수 차례 대교구에 자료 협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대교구가 지역사회의 치유엔 전혀 관심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볼티모어 대교구는 웹사이트에 ‘천사들의 증언’과 관련된 질의응답 페이지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대교구 측은 “매스켈 신부에 대한 의혹을 사건 발생 20여 년 뒤인 1992년에야 알게 됐다”며 “대교구가 그 전에 범죄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매스켈 신부에 관한 문서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대교구 정책과 메릴랜드주 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