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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여성의 처절한 사투, 죽을 만큼 힘들었다" '베를린 신드롬' 테레사 팔머

중앙일보

입력

[인터뷰] ‘베를린 신드롬’ 테레사 팔머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낯선 도시를 여행하던 중 낯선 사람의 집에 영영 갇히게 된다면? 7월 6일 개봉하는 ‘베를린 신드롬’(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매력적인 독일 남성 앤디(막스 리멜트)와 하룻밤을 보낸 여행객 클레어(테레사 팔머)가 앤디의 아파트에 감금되며 벌어지는 충격적 사건을 다룬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클레어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저앉게 되고, 심지어 인질범 앤디의 심리에 공감하기도 한다. 초췌한 분장, 수위 높은 노출, 혼신을 다한 열연으로 클레어의 절박한 심리를 낱낱이 표현한 호주 배우 테레사 팔머(31). 국내 관객에겐 ‘웜 바디스’(2013, 조나단 레빈 감독)의 여주인공 줄리로 친숙한 그와 e-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베를린 신드롬'에서 클레어를 연기한 테레사 팔머.

'베를린 신드롬'에서 클레어를 연기한 테레사 팔머.

- 처음 이 영화에 출연을 결심했던 이유를 기억하나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두 주인공 캐릭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과 빛, 이 두 가지에 동시에 이끌린 것 같아요.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는 과정처럼 보였기에, 무척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느껴졌죠.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처음 베를린을 방문했는데, 무척 친절하고 활기찬 도시였어요! 멋진 야시장, 길거리 예술 등 다양한 문화로 가득 찬 풍경이 인상적이었죠.”

- 제목 ‘베를린 신드롬’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했나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자신을 억압하는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 등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다룬 영화이자, 베를린이란 도시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생각해요. 베를린에는 여러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아마 쇼트랜드 감독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와 스톡홀름 증후군이 가진 복잡한 이면을 동시에 포착하려 했던 것 같아요.”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 감금된 클레어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며 격렬히 저항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가둔 앤디에게 의지하기도,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상을 보이기도 해요. 클레어의 심리를 어떻게 연기하려 했나요.

“‘베를린 신드롬’은 지금껏 제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도 무척 연기하기 힘들었던 영화였어요. 감금 상태에 처한 클레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뿐이었을 거예요. 어떤 날은 감금된 현실에 완전히 안주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어떤 날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한 채 영영 제정신을 되찾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절망적 상황에 내몰린 클레어가 느낄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게 무척 중요했어요. 이 같은 ‘심리적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기사들을 읽어가며 클레어를 만들어 갔죠.”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 판타지, 로맨스 등 여러 장르영화에 등장했지만, 유독 스릴러·호러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무조건 ‘더 무겁고 어두운 소재’에 매력을 느껴요. 어릴 적부터 그런 영화들이 제 마음을 사로잡아왔던 것 같아요. 아마 사람들이 실제 범죄 사건들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병적인 호기심’일지도 몰라요. 제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연기를 통해 탐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게 조금씩 제 한계를 넓혀가며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웜 바디스'에서, 좀비 R(니콜라스 홀트, 사진 중앙)과 사랑에 빠지는 줄리를 연기한 테레사 팔머(사진 오른쪽).

'웜 바디스'에서, 좀비 R(니콜라스 홀트, 사진 중앙)과 사랑에 빠지는 줄리를 연기한 테레사 팔머(사진 오른쪽).

- 최근엔 배우 외에 제작자와 각본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영화 제작의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현재는 남편 마크(미국 배우 마크 웨버)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와이드 어웨이크 시네마(Wide Awake Cinema)’라는 영화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현재 두 편의 TV 쇼와 다큐멘터리 1편, 장편영화 1편을 개발하는 단계에 있어요.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큼, 작가와 프로듀서로서 일하는 게 즐거워요.”

- 올해 초 개봉한 ‘핵소 고지’(2월 22일 개봉)에선 멜 깁슨 감독과 만났었죠.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나요.
“알폰소 쿠아론, 우디 앨런, 드레이크 도리머스(‘이퀄스’(2005)) 감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매 순간 새롭고 진보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신인 감독들도 포함해서요. 저는 영화를 만들며 저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좀 더 색다른 방식을 시도하길 좋아해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진 연출자라면, 그 누구라도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어요.”

'웜 바디스'의 한 장면

'웜 바디스'의 한 장면

- 배우의 꿈을 품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은 무엇인가요.
“어릴적 ‘소공녀’(1995, 알폰소 쿠아론 감독)를 무척 좋아했어요. 현실과 마법이 어우러진 영화 속 세계에 푹 빠져 있었죠. 여덟 살 때 그 영화를 보며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에 대한 제 열정은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죠!”

- 현재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해요. 아이들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모든 부분이 달라졌어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에요. 아이들로 인해 제 안의 모든 감정은 예전보다 깊고 풍부하며, 즐거워졌어요.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지만요(웃음). 엄마가 되는 일은 지금껏 제가 해온 경험 중 가장 위대한 일이었어요. 제 삶에서 가장 멋진 한때라고 할 수 있죠.”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베를린 신드롬'의 한 장면.

-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에 여성 배우를 위한 배역이 한정돼 있다고 느끼나요.
“부정할 순 없겠죠. 하지만 최근 이런 현상을 바꾸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여성 캐릭터들이 최근 여럿 등장했고, 저 역시 최근 들어 흥미진진하고 획기적인 이야기들을 여럿 읽었어요.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사실이죠.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이런 분위기 자체가 형성됐다는 사실이 반갑고 기뻐요.”

- 영화배우를 꿈꾸는 여성 지망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인가요.
“그냥 ‘견디세요!’ 당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분야라면, 그 속에서만큼은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예스(Yes)’라고 답하세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해왔어요. 특히, 독립영화에 출연할 땐 보수를 받지 못했지만, 대신 영화 현장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나올 수 있었죠. 신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멋진 선물이랄까요. 먼 훗날 누가 당신이 출연한 독립 영화를 보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제 데뷔작 ‘2:37’(2006)은 당시 18세에 불과했던 무라일 K 탈루리 감독이 연출했지만, 2006년 칸국제영화제에 프리미어로 초청됐어요. 촬영할 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죠, 누가 알았겠어요?”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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