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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유럽의회 초대 의장 지낸 시몬 베유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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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53년 전 프랑스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며 여권 신장의 상징이 된 여성 정치가 시몬 베유(사진)가 지난달 30일 타계했다고 프랑스 르몽드 등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89세.

강한 유럽 만들기, 인권 개선 앞장 #53년 전 프랑스 낙태 합법화 주도

보건부 장관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1974년 11월 베유는 낙태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법안이 통과하기까지 두 달간 베유는 언론을 비롯해 가톨릭 사제들, 법안에 반대하는 여성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수년 간 찬반 논쟁이 지속된 이슈인 데다 당시만해도 프랑스는 보수적인 사회였다. 자크 시라크 당시 국무총리는 법안을 외면했고, 법무부 장관마저도 반대했다. 베유를 지지하는 이는 그를 발탁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베유는 “지금도 상당수 의사와 시민들이 임신중절을 행하고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의원 한 명, 한 명을 설득했다. 특유의 추진력과 끈기로 결국 법안은 통과됐고, 베유는 일약 스타 정치인이 됐다. 파리정치대학원과 국립사법학교를 졸업한 베유는 50년대 치안판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법률가였다. 법관으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교정시설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에 진력했다.

베유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수식어는 홀로코스트(나치 대학살) 생존자 출신의 첫 여성 유럽의회 의장이라는 것.

베유는 17세이던 1944년 부모가 유대계란 이유로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부모와 오빠가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베유와 다른 두 자매는 살아남았다. 베유는 1979년부터 3년 간 유럽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강한 유럽연합(EU) 만들기에 앞장섰다. 수용소 탈출 후 자유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자서전 ‘삶’은 2007년 출간돼 스테디셀러가 됐다. 베유의 유족으로는 2013년 별세한 남편 앙투완 베유와의 사이에 둔 세 아들이 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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