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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하늘, 가슴 시린 애잔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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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21면

구소련 멜로디야 음반에서 나온 블라디미르 카펠니코프의 트럼펫 연주집.

구소련 멜로디야 음반에서 나온 블라디미르 카펠니코프의 트럼펫 연주집.

경북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대의 시골이 다 그랬겠지만, 내 고향도 오영수가 『요람기(搖籃期)』에 쓴 것처럼 ‘기차도 전기도 없었으며,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어쩌다 시커먼 ‘찌프차’가 동네에 들어오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때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빙 둘러서서 구경했다. 물론 누구도 손을 대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낯설고 강렬한 기름 냄새에 코를 막기도 했다.

an die Musik : 언덕 위의 나팔 소리

대여섯 살 소년에게 시골은 심심한 곳이었다. 형들과 누나가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서 감나무밭에 가 감꽃을 주웠다. 오월에 떨어지는 작고 하얀 감꽃은 실로 꿰면 목걸이가 되었다. 산비둘기가 꾸룩 꾸꾸~ 정적을 깨고, 어쩌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깨알만 한 제트기가 하얀 꼬리를 끌며 소리 없이 날았다.

집 뒤꼍은 무서운 곳이었다.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달려가 보면 닭은 사라지고 핏자국과 함께 깃털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닭을 채간 것은 마을 공중에 떠 있는 매였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흰 눈이 천지를 덮은 아침에는 소나무 가지 찢어지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형들은 마당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토끼 사냥을 갔다. 막내인 나는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저녁 부엌 가마솥에서 설설 끓던 토끼고기 냄새가 지금도 코끝을 스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김천으로 이사했다. 나의 요람기는 갑자기 끝이 났다. 김천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작고 평범한 도시다. 추풍령 아래에 있고 천년고찰 직지사가 있다는 정도로 소개된다. 참, 만화가 이상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만화를 읽다보면 이정표에 ‘직지사’가 나온다.

형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을 정도니까 그리 먼 곳이 아니지만 김천은 어린 나에게는 신천지였다. 가장 놀란 것은 고속버스였다.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했는데, 김천에도 고속버스가 들어왔다. 산골에서 못 보던 자동차들을 김천에서 보고 신기해했지만 고속버스는 차원이 달랐다. 동그라미를 삼등분한 마크를 단 버스(벤츠)는 늘씬한 몸매로 시내버스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달리는 사냥개를 그린 2층 버스(그레이하운드)는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을 불러 일으켰다.

고속버스 구경도 몇 번으로 끝났다. 도시로 이사를 나왔어도 심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고향보다 더 갈 곳이 없었다. 감나무 밭도 없고, 눈이 와도 형들은 더 이상 토끼를 잡으러 가지 않았다. 고속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이듬해 집 담벼락에 박정희 대통령과 또 다른 남자의 얼굴 사진이 붙었다. 대통령은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지만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대통령보다 젊고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 ‘김대중’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은 9년 뒤 대학 1학년인 1980년 봄이었다.

나의 놀이터는 동네 뒷산이었다. 한 달음에 올라갈 수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김천시가 한 눈에 들어왔고 새로 닦은 경부고속도로의 까만 아스팔트가 푸른 들판을 가로질렀다.

더운 여름철 선선한 저녁이면 나팔 부는 형이 산에 올라왔다. 아마도 김천고등학교 밴드부 학생이었으리라. 그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멀리 북쪽의 황악산 능선을 향해 금빛 나팔을 불었다. 해는 산마루를 넘어가고 하늘은 붉게 물들었는데 나팔 소리는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처음 보는 악기요 처음 듣는 음악이었다. 소년은 멀리서 바라보았는데 금관이 내는 소리는 맑고 애잔해서 가슴이 시렸다.

구소련에서 만든 멜로디야 음반을 한 보따리 가지고 있다가 거의 처분했다. 음질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르고 골라 몇 장 남겨 두었는데, 가끔 뽑아드는 것이 있다. 블라디미르 카펠니코프가 연주한 트럼펫 연주집이다. 소련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라면 티모페이 독시체르가 유명하지만, 나는 카펠니코프가 더 좋다. 그는 트럼펫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낸다. 악기 한 대의 소리가 오케스트라 전체보다 더 크다는 트럼펫으로 첼로나 클라리넷 음색을 내다니 대단하다.

곡목도 소박하다. 알비노니의 협주곡과 헨리 퍼셀의 소나타, 그리고 바흐-구노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가 불러도 좋고 모리스 장드롱의 첼로 연주도 아름답지만, 카펠니코프의 트럼펫으로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군가 곁에 앉아 어깨에 팔을 둘러 주는 느낌이랄까.

휴일 저녁, 석양이 거실을 비추는 시간, 카펠니코프의 슈베르트 아베마리아에 바늘을 내린다. 산꼭대기의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소년이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이었지만, 어쩌면 아베마리아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슴이 시린걸 보면.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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