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서 ‘양승태 퇴진’ 요구 첫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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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부통신망 익명게시판에 22일 양승태(69·사진)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낮까지 6개였다. 양 대법원장 취임(2011년 9월) 뒤 판사들이 집단적 사퇴 요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게시판에 비판 글 속속 #“일부 세력 여론몰이” 반박도 #또 한 차례 사법파동 조짐

한 판사는 “1988년 (2차 사법파동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이 중도 퇴진한 경우보다 심각한 사안이다.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용단을 내리시는 게 적절하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판사는 “법관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 결의 후 나흘이 지나도록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럴 거면 왜 (대법원장)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전국 판사대표 100명은 지난 19일 법관회의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조사와 관련자 문책 요구 등을 의결했다. 21일엔 법관회의 의장 이성복(57·16기)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에 의결안을 전달했다. 이 회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행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고, 법원행정처 내에 판사 성향을 분류해 놓은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마련됐다.

게시판에 양 대법원장 사퇴까지 요구하는 글이 속속 게시되자 “일부 세력이 여론몰이에 나섰다”고 이를 비판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판사는 “퇴진 요구 글이 올라오자마자 모 언론에서 바로 관련 기사를 올렸다. 일부 판사님과 해당 언론의 호흡이 시종일관 완벽하다”고 비난했다.

법원 내 갈등이 심해지면서 2003년 이른바 ‘4차 사법파동’ 이후 또 한 번의 사법파동으로 이어질 조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게시판에 비판적 견해를 올리면 어느 쪽이든 난타당하는 분위기다. 어쩌다 법원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참담하다”고 말했다.

법원 밖에서의 걱정도 커가고 있다. 한국법학교수회장인 정상용(62)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사법부에서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내부의 권력투쟁처럼 비쳐지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 24일까지다.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 등을 감안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중순 이전에 새 대법원장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현·유길용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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