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마크롱, 검찰 수사와 비리 의혹 장관 네명 사퇴로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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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압도적인 과반을 얻으며 승승장구하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과 내각의 비리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마크롱 자신은 장관 시절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 직면했고, 임명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신임 장관 네 명은 또다른 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사퇴했다.
 르 몽드 등은 20일(현지시간) "파리 검찰청 산하 경제범죄수사본부가 홍보대행사 아바스와 프랑스 경제부 산하기관인 ‘비즈니스 프랑스'의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며 "비즈니스 프랑스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 행사 관련 사업을 경쟁 입찰 없이 아바스에 수의계약으로 따게 해준 의혹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또 "당시 경제부 장관은 마크롱이었으며 그는 행사에 참석해 기조강연도 했다. 사업 규모는 38만 유로(4억원 상당)였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미 대선 전에 폭로 전문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가 이같은 의혹을 보도하자 부정 청탁이나 특혜 제공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 3월 내사의 일종인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프랑스 회계감독원은 지난 2월 이 문제가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현 노동장관인 뮈리엘 페니코는 당시 비즈니스 프랑스의 대표였다.
 의혹이 불거지자 대선 당시 미셸 사팽 경제부 장관은 관련 부서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마크롱과 경제부의 잘못은 전혀 없고 비즈니스 프랑스 측의 실책이라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프랑스 5공화국 두번째 여성 국방장관인 실비아 굴라르(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이 19일 에어쇼를 관람하고 있다. 굴라르는 다음날 사퇴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5공화국 두번째 여성 국방장관인 실비아 굴라르(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이 19일 에어쇼를 관람하고 있다. 굴라르는 다음날 사퇴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추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비리 사안으로 장관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비아 굴라르 국방장관은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에게는 공직의 신뢰 회복과 프랑스의 개혁, 유럽연합(EU) 재건의 과제가 있다"며 “이 과제들이 인선에 대한 고려보다 중요하므로 총리와 협의한 뒤 대통령께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제5공화국의 역대 두 번째 여성 국방장관으로 발탁된 굴라르 장관은 민주운동당(MoDem) 소속 유럽의회 의원 출신이다. 이달 초 카나르 앙셰네가 MoDem이 유럽의회 예산을 파리에서 활동하는 보좌관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허위 채용 의혹을 제기하자 검찰은 예비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굴라르는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미리 내각을 떠났다.

법무장관직에서 사퇴한 프랑수아 바이루 

법무장관직에서 사퇴한 프랑수아 바이루

 MoDem 대표로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마크롱 지지를 선언한 뒤 새 정부의 법무장관에 임명됐던 중도파 거물 프랑수아 바이루도 같은 의혹으로 21일 전격 사퇴했다. 바이루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온 유럽장관 마리엘 드 사르네즈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인 리샤르 페랑 국토통합부 장관은 내각을 떠나 여당 원내대표로 옮겼다. 그는 대선 내내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의 사무총장으로 활약하며 대선 승리를 이끈 1등 공신이다.
 하지만 그가 대표로 있던 지역 건강보험기금이 부인의 건물을 임차하는 과정에서 페랑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페랑 역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
 총선 이후 장관들의 잇단 사퇴는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맞물려 스캔들에 휘말린 장관들을 내각에서 배제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프랑스 검찰은 취임 한 달이 갓 지난 대통령이자 총선 결과 의회 의석의 61%를 차지한 '살아있는' 권력 마크롱에게 매섭게 수사의 칼 끝을 겨누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마크롱 정부의 앞날이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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