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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에 살해당했다" 웜비어 사망에 분노한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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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으로 북한에 발을 디뎠던 청년이 18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고국에 돌아왔고, 불과 엿새 만에 짧은 생을 마쳤다. 북한에 억류됐다 돌아온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끝내 숨지자 미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웜비어의 친구들 뿐 아니라 그를 전혀 모르는 이들까지도 애도 대열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정치인들이 그의 죽음을 북한 정권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하는 등 미국내 정치적 비판도 격렬해지고 있다.
웜비어의 죽음이 긴장된 국제 정세에 불을 붙이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조짐이다.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정권을 규탄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AP=연합뉴스]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정권을 규탄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AP=연합뉴스]

웜비어의 가족은 이날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내고 “불행히도, 아들이 북한에서 받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학대로 인해 오늘의 슬픈 결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면서 북한 책임론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성명을 내고 조의를 표하는 한편, 북한을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 부르며 규탄했다.

트럼프, "북한은 잔혹한 정권" 비판 #WP "북한여행금지법 통과될 수도" #미중 외교안보회담 의제 떠오를 듯

대북 강경파 "김정은 살인 정권" 

의회에서는 대북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존 매케인(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시민인 오토 웜비어가 김정은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murdered)”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매케인은 “그는 인생 마지막 한 해를 북한 주민들이 70년간 갇혀있었던 악몽- 강제 노동, 극심한 기아, 조직적인 잔학행위, 고문, 그리고 살인-속에서 살아야 했다”면서 그는 “미국은 적대 세력에 의한 시민의 살해를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벤자민 카딘(민주당) 의원도 “오토는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김정은 정권 때문에 죽었다”면서 “북한은 그들의 지속적인 야만적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는 미국인의 북한 여행 제한 조치를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에서 북한을 찾는 여행객은 연간 5000명 정도이며 이 중 1000여 명이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북한여행통제법 통과 가능성 높아져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의원과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은 관광 목적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고 그 이외의 방문객에 대해서는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는 '북한여행통제법'을 지난달 발의한 바 있다. 의회에서는 시민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이유로 이를 통과시키길 주저해왔지만 웜비어의 죽음이 법안 통과의 계기가 될 것으로 현지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지난 14일 하원 외교위에 출석해 “북한에 일종의 여행비자 제한 조치를 취할지를 검토해왔다. 최종 결론은 안 났지만 계속 고려하는 중”이라고 밝혀 북한 여행 금지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틸러슨은 19일 애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웜비어의 부당한 구금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물으며, 불법적으로 억류중인 나머지 세 명의 미국인을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체제전복혐의로 재판을 받은 오토 웜비어. [AP=연합뉴스]

북한에서 체제전복혐의로 재판을 받은 오토 웜비어. [AP=연합뉴스]

패네타 전 국방장관 "중국 정부가 밝혀야" 

 미국은 중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CNN에 따르면 당장 21일 워싱턴에서 열릴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중국과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대북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NN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도 말은 강하게 했지만 실제로 북한이나 중국에 펀치를 휘두르지는 않았다"면서 "웜비어의 사망은 트럼프가 대북 강경 노선을 걷게 하고 베이징과의 긴장도 높이도록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클링너는 트럼프 행정부 역시 오바마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 기업이 북한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컨더리 제재'에 사실상 실패했다고도 지적했다.

리온 패네타 전 국방장관도 웜비어의 사망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중국 정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웜비어의 사인에 대한 중국 측의 설명이나 외교적 항의, 제재 강화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 13일 1년6개월만에 북한에서 석방된 웜비어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미국에 귀국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 1년6개월만에 북한에서 석방된 웜비어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미국에 귀국했다. [AP=연합뉴스]

웜비어는 버지니아대 재학중이던 지난해 1월 홍콩 연수를 가는 길에 북한에 들렀다가 억류됐다. 정치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체포돼 체제전복 혐의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북한에는 한국계 김학송·김상덕씨와 김동철 목사 등 3명의 미국 국적자가 억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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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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