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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노사정이 머리 맞대지 않으면 실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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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 완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주 완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노동정책은 본질에서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이를 시행할 때는 구체적이고 정교한 정책의 수립과 시행 과정이 필요하다.

노사정이 머리 맞댄 북유럽처럼 #힘들어도 대화와 설득 과정 중요 #노동자 수혜 정책과 노동개혁을 #패키지 처리하는 전략적 접근도

첫째,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노동 개혁’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의 단기 희생이 예상될 때는 더욱 그렇다. 노동법과 제도는 평등을 넘어선 노동 계층에 대한 보호를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혜의 대상과 정도가 불평등하게 되거나 부당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생기게 된다. 그 시점에서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론 노동 계층뿐 아니라 국가 전체에 이익이다. 이런 취지를 노동 계층, 나아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여한 특권이나 특혜를 줄이는 시도가 아님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수혜 집단의 저항에 대해 도덕적·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정책을 수용할 경우 최저 노동 계층에 대해 과감히 지원하고 수혜 집단에 대해 노동 공동체 정신에 기반을 둔 양보를 공개적으로 호소하는 방법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노동 계층의 다양성과 노동 문제의 복잡성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직업의 종류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수십억원을 받는 전문가 및 대기업 임원부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 근로자까지 노동법 보호 대상이다. 노동 계층의 다양성은 임금의 고저뿐 아니라 업종·근무형태 등 다양하다. 이러한 노동 계층의 복잡한 구조와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반적인 정책이 획일적으로 시행된다면 혜택을 상대적으로 덜 받거나 피해를 보는 집단의 저항이 생긴다. 어떤 형태의 근로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관한 구체적 목표 설정이 전제돼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함에도 개선이 별로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개념 정의에 많은 논란이 있지만 기간제 근로자, 파견 근로자, 도급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소득도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비정규직 문제를 일률적으로 바라보니 구체적이고 효율적 방안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또 해결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이후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해결 목표 중 중요한 내용은 고용 안정과 격차 해소다.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해 산업이나 사업장의 업종·규모와 수익성, 소속 근로자의 소득 수준이나 근로형태 등을 감안해 어떤 목표를 어느 시점에 달성할지 결정해야 한다.

노동 문제에 있어 소득이 우선적 기준이 돼야 한다.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되며 소외받는 저소득 근로의 문제가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비정규직도 ‘저소득’ 비정규직 문제가 먼저 다뤄져야 한다.

셋째, 노사정 주체 간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최대한 이뤄져야 한다. 북유럽의 노사정 합의에 의한 노사관계 모델은 수십 년간의 치열한 토론과 설득·양보에 의해 완성됐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모델 도입이 아니라 그들처럼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노동 역사를 보더라도 성공의 중요 원인은 개혁의 내용이라기보다 합의를 위한 노력과 설득 과정이다. 단기적으로 희생을 치르더라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노사 관계는 노사는 대립하고 정부는 조정하는 삼면 구조를 이룬다. 거의 모든 정책이나 입법에 있어 노사 양측을 공통적으로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다. 다른 분야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노사정위원회라는 훌륭한 제도를 만들었지만 모든 주체가 참여한 기간은 매우 짧다. 참여하지 않는 주체도 문제지만 강하게 설득하지 못하는 주체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 우리 노동 역사상 훌륭한 전례가 있다. 1990년대 말 노동법의 후진성을 대변하는 제도가 복수노조와 전임자 제도였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라는 훌륭한 제도를 통해 새 노동법을 만들면서 두 숙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상호 준비가 필요해 장시간의 유예기간을 두었고, 그 기간이 끝난 후에도 노사 합의에 따라 두 차례 연기했으며, 13년 만에 복수노조는 인정되고 전임자 제도는 폐지됐다. 많은 우려와 달리 현재까지 문제없이 잘 정착되고 있다.

넷째, 노동자를 대표하는 최상급 노동단체는 여러 노동 계층의 다양성을 종합하고 수렴하며 정책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때로 충돌하기도 하는 다양한 집단을 조정해야 한다. 특정 노동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손해 보는 집단이 발생하면 설득 논리와 명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혜택이 되는 새 정책은 일방적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고 노동 대표 조직의 특수한 구조적 입장을 고려해 정책의 결정 과정을 공유하거나 시행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때 노동계의 양보를 포함해 패키지로 노동 개혁을 처리하는 것이 전략적이고 효율적이다. 노동정책이나 노동 개혁의 그랜드 빅딜(Grand Big Deal)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자를 위해 시행된 대체휴일제·정년연장제가 노동 개혁과 패키지로 이뤄졌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주 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